[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03)

  • 입력 1997년 9월 22일 07시 44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29〉 공주의 애교에 홀려 정신이 얼떨떨해진 마루프도 말했다. 『오, 불쌍해라! 당신이 그토록 나를 그리워했다니! 날 용서해 주구려. 오늘도 알라께서 나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라는 임무를 맡기지만 않으셨다면 나는 당신 곁으로 달려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나를 그리워하는 것 이상으로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었거든요』 마루프가 이렇게 말하자 공주는 짐짓 하얗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 『당신도 저를 그리워하셨다고요? 어머, 당신은 참 거짓말도 잘하시네요』 공주가 이렇게 말하자 마루프는 간곡한 표정과 목소리로 말했다. 『오, 여보! 제발 내 말을 믿어주구려. 우리가 떨어져 있는 지난 몇 시간 동안에도 나는 당신과 이렇게 부둥켜안고 당신의 몸을 만지고 싶어 미칠 것만 같았답니다』 마루프가 이렇게 분별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공주는 말했다. 『오, 나의 사랑, 낭군님. 제 눈을 시원케 하는 이, 제 생명의 열매여, 부디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세월도 우리 두 사람을 떼어놓지 말기를! 당신을 향한 제 사모의 정이 마음에 집을 짓고, 애욕의 불이 제 간장을 태워버렸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당신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이 내리는 어떤 분부도 어기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진실을 말씀해주셔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속여보았자 이로울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수로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신용을 인정받을 수도 없을 것이고, 장차 태어날 우리의 아이를 위해서도 공덕을 쌓는 일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대체 당신은 언제까지 아버지를 속일 생각입니까? 걱정이 되어 이런 말을 하는 것이랍니다. 아무런 방비도 하기 전에 이 일이 탄로나게 되면 당신은 화를 면키 어려울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모든 진실을 저에게 털어놓으세요. 결코 당신께 해롭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저에게 진실을 고백한다고 해서 불리한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듣고 있던 마루프는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어 있을 뿐 아무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주는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거대한 상인으로서 한 무리의 짐꾼들을 데리고 왔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리고 말끝마다 「내 짐이 도착하기만 하면! 내 짐이 도착하기만 하면!」하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당신의 짐은 도착할 기미가 영 보이지를 않고, 그 때문인지 당신 얼굴에는 불안의 빛이 역력하답니다. 자, 이제 진실을 말해주세요. 그것이 모두 거짓말이었다면 그렇다고 말씀해주세요. 어떤 수를 써서든지 당신을 구해드릴 테니까요』 듣고 있던 마루프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 당신 앞에서 무슨 말을 못하겠소. 모든 걸 털어놓을 테니 잘 들어보구려』 마루프가 이렇게 입을 떼자 공주는 말했다. 『말씀해주세요. 진실은 안정의 방주이니까요. 거짓말을 하면 목숨보다 소중한 명예를 잃어버리게 된답니다. 옛 성현들도 「진실을 말하라! 진실을 말하여 설령 사나운 불길에 빠지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알라의 증명을 구하게 되리라」하고 말했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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