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502)

  • 입력 1997년 9월 21일 08시 41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28〉 왕은 대신을 데리고 거실로 갔다. 거기서 그는 공주를 불러내었다. 그때 대신은 휘장 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로 부르셨어요, 아버님?』 사뿐사뿐 왕에게로 걸어온 공주가 물었다. 이렇게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시냇물 소리처럼 맑고 아름다웠으며 꿈꾸는 듯한 행복감에 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주는 지금 한창 꿈같은 밀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대신이 너에게 뭔가 물어볼 것이 있다고 한다』 왕이 말했다. 그러자 공주는 휘장 뒤에 서 있는 대신을 향해 물었다. 『여보세요, 대신님! 대체 무슨 일이지요?』 그러자 대신이 말했다. 『네, 공주님! 다름이 아니오라, 공주님의 부군께서는 지참금도 내지 않고 공주님과 결혼하셨을 뿐만 아니라, 충성된 자의 임금님의 재보까지 탕진하였습니다. 짐이 도착하기만 하면 곱으로 갚겠다고 연방 약속은 하지만, 도무지 약속을 지키시지 않습니다. 부군의 짐은 도대체 언제 도착할지 영 기별이 들리지 않습니다』 듣고 있던 공주가 물었다. 『그래서 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뭐죠?』 『까놓고 말씀드리지요. 부군의 정체에 대하여 사실을 가르쳐주셨으면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저도 그이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이는 보석이며 보물이며 값비싼 피륙을 들먹이면서 저에게 주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여태껏 아무것도 지킨 건 없어요』 『그러니까 말입니다. 공주님, 오늘밤 부군과 함께 계실 때 이렇게 말씀해보세요. 「당신은 저의 남편이랍니다. 저는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 터이니 아무 걱정 마시고 사실을 말씀해주세요. 진실을 말씀해주시면 좋은 꾀를 내어 당신을 도와드릴 테니 안심하시고 말씀해주세요, 당신의 실체에 대해서 말입니다」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맹세를 하시면서 구슬러보세요, 모든 사실을 실토하도록 말입니다. 남자들이란 여자들 앞에서는 약해지는 법이랍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모든 것을 들려주세요』 대신의 말을 듣고 있던 공주는 왕에게 말했다. 『아버님, 그런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하면 그이를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건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한 공주는 자리를 떴다. 밤이 되자 마루프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공주의 방을 찾아왔다. 공주는 쪼르르 마루프에게로 달려가 그의 목에 매달리며 갖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오! 내 사랑, 당신이 제 곁에 없는 지난 몇 시간 동안 얼마나 당신을 그리워했던지 아시기나 하세요? 저의 입술은 당신의 입맞춤에 목말라하고 있었고, 저의 젖가슴은 당신의 애무를 기다리느라고 가슴 조이고 있었답니다』 공주는 연방 남편을 애무하고 입맞추고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서 꿀보다 달콤한 말로써 꾀니 남편은 마침내 얼이 빠져 분별력을 잃고 말았다. 여자가 남자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이 달리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파티마 같은 악처에게 시달릴 대로 시달린 불행한 남자에게는 말이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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