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97)

  • 입력 1997년 9월 13일 08시 22분


제 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 〈23〉 창고지기는 연방 금화를 날라왔고, 마루프는 구경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무희며 악사며 광대들에게 금화를 뿌려댔다. 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돈을, 변변히 입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옷을 나누어주었으니 세상에서도 다시 없이 흥겹고 유쾌한 잔치였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유쾌해하는 데도 불구하고 대신은 전혀 유쾌하지가 않았다. 유쾌하기는 커녕 흥청망청 돈을 뿌려대는 마루프를 보면서 울화가 치밀어 당장에라도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시원히 입밖에 내어 말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뿐만 아니라 아리 또한 마루프가 하는 꼴을 보고 억장이 무너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돈을 물처럼 흩뿌리는 꼴을 보다못한 아리는 마루프에게 말했다. 『자네 머리 위에 알라의 벌이 내려지기를! 상인들의 돈을 마구 써버리고도 모자라 그래, 이번에는 임금님의 돈까지 써버릴 작정인가? 그러다가 어떻게 감당할 작정인가?』 그러자 마루프가 되받았다. 『자네가 걱정할 일은 아닐세. 내 짐이 도착하면 임금님께 듬뿍 갚아드리면 그만이니까 말야』 마루프가 이렇게 말하자 아리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마루프 곁에 있다가는 장차 어떤 화를 입게 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리가 떠나는 걸 보자 마루프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될대로 되라지. 인간은 각자의 숙명을 벗어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말야』 이렇게 말한 마루프는 계속해서 금화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축하연은 사십 일 동안 계속되었다. 사십 일째가 되자 마침내 신방이 차려졌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들자 사람들은 마루프를 두냐 공주의 침실로 안내했다. 마루프가 등받이가 높은 장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자 사람들은 휘장을 내리고 문을 닫아주었다. 그리고 일동은 두 사람만 남겨놓은 채 물러갔다. 얇은 비단 잠옷을 입은 채 마루프 앞에 서 있는 공주는 숲 속에서 길을 잃은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이제 갓 스물 난 그녀는 정말이지 아침 이슬에 젖은 한떨기 수선화 같았다. 맑고 청초한 얼굴에 눈빛은 영롱하기가 물에 젖은 흑진주 같고 입술은 장미꽃봉오리 같았다. 몸매는 날씬하여 더없이 기품이 있고, 젖가슴은 불룩하고 허리는 잘록하여 젊음의 아름다움을 한껏 풍기고 있었다. 얇은 비단 잠옷 위로 은은히 드러나 보이는 그녀의 두 다리는 더없이 매끈하고, 어떤 남자에게도 보인 적 없이 고이고이 숨겨져 왔던 그녀의 속살은 티끌 하나 없이 희고 깨끗하였다. 정말이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녀의 아름다움에는 어느 것 하나 신비롭지 않은데가 없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날 밤 신부로 하여금 신비를 더해주는 것은 그녀의 그 조용하고도 은은한 미소였다. 어떻게 보면 수줍어하는 듯하고, 어떻게 보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하고, 또 어떻게 보면 더없는 행복감에 빠져있는 듯한 그 아름다운 미소를 보자 마루프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