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95)

  • 입력 1997년 9월 11일 07시 52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21〉 물욕에 눈이 어두운 왕은 다소 흥분된 목소리로 계속했다. 『카이로에서 온 그 상인은 보석을 잔뜩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리고 그자가 만약 공주를 만나 그 아름다운 얼굴을 보게 된다면 틀림없이 반하여 보석이며 훌륭한 물건들을 공주한테 선물할 테지. 이건 넝쿨째 굴러든 호박이야. 그러니 그대는 더 이상 아무 말 말고 그 상인과 내 딸의 결혼이나 주선해보도록 하라』 대신은 왕이 두려워 더 이상 아무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들개에게 가축을 지키게 하는 셈이지!』 이렇게 중얼거리는 대신의 가슴은 왕과 공주, 그리고 마루프에 대한 걷잡을 수 없는 복수심으로 찢어질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짐짓 태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왕 앞을 물러나 마루프를 찾아갔다. 『임금님께서는 그대가 매우 마음에 드셨다. 임금님한테는 아름답고 기품있는 공주님이 한분 계시는데, 그 공주님을 그대에게 시집보내고자 하신다. 그러니 그대의 의향은 어떠한가』 이 말을 들은 마루프는 몹시 난처했다. 왜냐하면 그는 불행한 결혼생활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왕의 청을 반대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저로서는 좋습니다. 그러나 제 짐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공주님과 결혼을 하자면 지체와 격식에 맞는 지참금을 드려야 할 테니까요. 적어도 오천 파스는 드려야겠지요. 그밖에도 결혼식날 밤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천 파스는 나누어주어야 할 테고, 혼례행렬에 참가해 주는 분들에게도 일천 파스는 뿌려야 하고, 그밖에도 군사들에게 나누어줄 돈이며 술과 음식값으로 일천 파스가 들겠지요. 그뿐이 아니지요. 결혼식날 아침에는 공주님께 보석 백 개는 드려야겠지요. 그와는 별도로 신부의 장래를 위하여 노예계집이며 내시들에게도 선물을 나누어주어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따로 백 개의 보석이 있어야겠지요. 게다가 그 경사스러운 날 제대로 입을 것이 없는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옷가지도 나누어주어야겠지요. 제 짐이 도착하기만 하면 그런 모든 것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결혼식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대신은 왕에게로 돌아가 마루프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였다. 이 말을 들은 왕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이 그자의 희망이라면 어찌 그런 사람을 두고 사기꾼이란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그자는 자신의 짐꾼들이 도착하기 전에는 공주와 결혼도 할 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대신은 말했다. 『오, 충성된 자의 임금님이시여, 그러나 저는 여전히 그자를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기꾼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자는 한층 더 대범하고 단수가 더 높다는 점일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무서운 기세로 꾸짖으며 말했다. 『내 목숨을 두고 말하거니와, 다시 한번 그런 헛소리를 하면 나는 그대의 목숨을 살려두지 않으리라! 당장 가서 그를 데리고 오기나 하라. 내가 직접 일을 처리하겠다』 왕은 왠지 모르게 마루프가 좋아졌던 것이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