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허승호/北-日의 이산가족은 만나는데…

  • 입력 1997년 9월 10일 20시 05분


83년 여름 KBS가 생방송한 이산가족찾기는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든 거대한 인간드라마였다. 당시 넓은 여의도 광장을 뒤덮었던 가족찾기 벽보는 분단민족 통한의 상처였으며 혈육을 부르는 절규였다. 지금 북한과 일본사이에서는 「일본판 이산가족 찾기」라고 할 만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이른바 「일본인 처」의 고향방문 문제다. 일본인 처란 59년 시작된 재일교포 북송때 한국인 남편을 따라 북한에 들어간 일본인 여성을 가리키는 말. 이들은 여태껏 북한이 주장하는 「사회주의 낙원」에서 한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길게는 38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9일 북―일(北―日)은 적십자협의회에서 일단 15명규모로 고향방문을 주선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문제의 첫 실마리가 풀리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일본인 처의 전체 규모는 1천8백31명으로 집계됐지만 대부분 70세가 넘은 고령으로 현재 5백명가량만 생존해 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안부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일찍이 통일전 독일에서도 60세 이상의 고령자를 대상으로 상호방문을 허용하는 등 이산가족 재회와 통신의 왕래를 허용했다. 양측은 통일이 될 때까지 그걸 정치 또는 이념대결에 이용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철저히 인도주의 명목으로 추진됐기에 30여년이나 계속될 수 있었다. 이번 회담에서도 이성호 북한적십자회 부위원장은 『인도주의 정신아래 합의에 이르게 됐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북한의 실정을 보면 그렇게 믿을 수가 없다. 진정한 인도주의 정신이라면 우리의 남북한 이산가족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71년 남북한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적십자회담을 시작했지만 85년 딱 한 차례 상호 고향방문 행사를 벌이고 난 뒤 감감 무소식이다. 92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인도적 문제의 해결」 조항에도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문제가 포함돼 있지만 실현가능성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며칠후면 추석이다. 북―일간의 합의를 보는 우리 이산가족들의 심정은 더욱 착잡한 모습들이다. 이산 1세대는 대개 70세이상의 고령이다. 『생전에 형제들의 얼굴을 보는 건 기적일 겁니다.부모님의 산소나 있을지, 산소앞에서 실컷 울기라도 해봤으면…』 칠순의 이정옥할머니(서울 중랑구 면목동)는 눈시울을 붉혔다. 허승호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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