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6일 새벽의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한지도 어언 한달이 지났다. 너와 함께 유명을 달리한 2백28명 가운데 90명만 신원이 확인되고 아직도 많은 이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승무원 합동분향소에 모신 너의 동료 19명 중에도 6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줄을 잇는 조문객의 헌화분향과 동료들의 정성어린 시중 속에서도 너는 어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는가.
엄마 얼굴과 아빠 키를 빼닮은 너는 어딜가나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걸출한 미인이었다. 발산동 자취방의 주인아주머니 뿐만 아니라 부근의 가게 아주머니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너는 「요즘 아가씨」가 아니었다. 항상 밝은 얼굴에 예의바른 처녀였다. 어려운 친구들을 항상 끼고돕는 의로운 친구였다.
학교 다니면서도 용돈투정 한번 안하던 네가 8월3일 집에 왔을 때는 엄마한테 『목걸이 하나 사 달라』고 생전 안하던 짓을 했다. 그리고 유난히 많이 웃고 많이 재잘거렸다. 엄마 갖고 싶은건 다 사주고 동생 유학도 책임지겠다고 장담했다. 세탁소에 맡긴 옷가지도 다 찾아가고 카드에 남은 빚이라고는 2만3천원밖에 없었다.
스물세살 꽃다운 나이에 수많은 이의 사랑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엇이 그리 급해 주위를 챙겼단 말인가. 그래 죽음으로밖에 엄마 소원과 동생 장래를 책임질 수 없었단 말인가.
선희야, 너는 아빠 엄마의 자랑스런 딸일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랑이었다. 그런 네가 왜 이리도 빨리 세상을 등졌단 말인가. 이역만리 구천을 헤맬 영혼을 생각하니 가슴이 멘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왜 이리 좋은 사람을 빨리 데려가셨는지.
선희야, 하루 빨리 모습을 다시 나타내어라. 몸무게가 8㎏이나 줄어든 아버지와 허구한날 눈물로 밤을 지새며 끼니를 거르고 있는 어머니, 입술을 깨물며 군복무 중인 동생 기수, 너를 찾을 때까지는 절대로 분향소를 뜰 수 없다고 버티는 친구들을 생각해서라도 한시 바삐 나타나려므나.
수많은 친척 친지 동료들의 간절한 기원을 들어다오. 그리하여 엄마 아빠 가슴에 박힌 못을 덜 아프게 해주렴.
황장진(강원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