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90)

  • 입력 1997년 9월 6일 08시 14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16〉 그러나 마루프에게 돈을 빌려준 상인들은 달랐다. 벌써 스무날이 흘렀지만 마루프의 짐은 도착하지 않으니 차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마루프씨의 짐은 아직도 오지 않는군. 대체 그분은 언제까지나 남의 돈을 빌려 가난뱅이들에게 나누어 줄 셈인가?』 그러자 다른 상인 하나가 말했다. 『아무래도 아리와 의논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리하여 상인들은 아리에게로 몰려갔다. 『여보시오, 아리씨. 마루프씨의 짐은 대체 언제나 도착하는 거요?』 상인들이 이렇게 묻자 아리는 몹시 난처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시오. 이제 곧 도착할 테니까요』 이렇게 둘러댄 아리는 마루프에게로 가 말했다. 『여보게 마루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내가 자네한테 빵을 구우라고 했지, 새까맣게 태우라고 했던가? 상인들은 돈을 돌려달라고 하네. 자네는 육만 디나르나 되는 돈을 빌려 그걸로 장사를 할 생각은 하지 않고 가난뱅이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었다며? 이제 이 일을 어쩔 셈인가? 상인들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할 셈인가?』 그러자 마루프는 말했다. 『걱정하지 말게. 육만 디나르 쯤이야 아무 것도 아닐세. 내 짐이 도착하기만 하면 피륙으로든, 돈으로든, 금으로든, 보석으로든, 원하는 대로 갚아줄 테니』 마루프가 이렇게 말하자 아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기가 막힐 노릇이군! 자넨 정말 물건을 갖고 있기나 한가?』 『얼마든지』 마루프의 이 말에 아리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는지 한동안 멀거니 상대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한참 뒤에서야 그는 말했다. 『알라시여, 제발 부탁이니 이 뻔뻔스러운 사내에게 벌을 내리소서! 나는 자네한테 그따위 거짓말을 나한테까지 하라고 가르친 적은 없네. 자네가 그렇게 뻔뻔스럽게 나온다면 나는 사람들 앞에 자네의 진실을 폭로할 수밖에 없네』 그러자 마루프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제발 잔소린 집어치워! 자넨 나를 무일푼으로 알고 업신여기고 있는데 그러고서도 나의 옛 친구라 할 수 있겠는가? 자루 속에는 금화가 잔뜩 들어 있단 말야. 짐이 도착하는 대로 그따위 시시한 빚 따위는 갑절로 갚아주지. 그런 돈 쯤은 나한테는 아무 것도 아니란 말야』 아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지난 이십일 사이에 자네 혹시 정신이 돌아버린 건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자네는 정말 괘씸한 놈이야. 나한테까지 거짓말을 하면서도 눈 하나 깜박하지 않다니 말이야. 정말이지 네놈은 등치고 간 빼먹을 놈이야!』 『마음대로 생각하게! 그러나 그 사람들에게는 좀더 기다려 달라고 하게. 내 짐이 도착하면 꾼 것의 갑절로 갚아줄 테니』 마루프와 헤어져 상인들에게로 돌아가면서 아리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일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 저놈의 머리가 돌지 않았다면 내 머리가 돌았을 테지』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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