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이 쓸모없게 된다면…

동아일보 입력 1997-09-03 20:13수정 2009-09-2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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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화폐가 결제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잃는다면 그 혼란과 불편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마치 태양이 꺼지듯 돈이 있어도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없고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게 되는 상거래의 급속동결과 일상생활의 일대 마비를 몰아올 것이다. 화폐경제시대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비슷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1일 밤 9시반 한국정보통신에서 운영하는 신용카드 조회용 전산망이 고장나 2시간동안 전국에서 신용카드를 이용한 결제가 불가능했다. 신용카드 조회용 전산망은 의뢰된 카드가 거래중지된 카드는 아닌지 등을 가려 거래승인을 내주는 신용확인망인데 그것이 고장났으니 신용카드 가맹점들이 손님이 낸 카드를 선뜻 받을 리 없다. 자연히 현금결제를 요구하는 등 일대 실랑이가 벌어졌다. 우리 사회에서도 신용카드가 대용화폐의 자리를 굳힌 지는 이미 오래다. 현금이 없어도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한 업소가 이미 40만곳으로 늘었다. 발급카드수가 작년말로 4천만장을 넘어섰고 카드이용 거래도 해마다 평균 20% 이상 증가해 지난해 신용카드 결제액이 61조원을 돌파했다. 10년만에 30배 이상 팽창한 거래규모다. 이쯤이면 신용카드는 이제 제2의 화폐다. 그런데 그 화폐기능이 2시간이나 중단되었으니 신용거래를 지향하는 사회의 오점이 아닐 수 없다. 신용화폐의 생명은 신용이다. 반드시 정부보증 화폐로 환전된다는 믿음이 없는 한 카드를 이용한 신용거래는 활성화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그 믿음을 보장하는 카드조회전산망은 중추신경이나 다름 없는데 보조시스템마저 동시에 고장났다니 말이 안된다. 다시는 같은 사고가 되풀이되지 않게 사고원인을 정확하게 밝혀내고 문제점을 철저히 보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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