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81)

  • 입력 1997년 8월 28일 08시 47분


제9화 악처에게 쫓기는 남편〈7〉 낯선 산꼭대기에 버려진 마루프는 너무나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이 황폐한 산꼭대기에 혼자 앉아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을 내려가보니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이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건물들이 즐비한 도성이 하나 나타났다. 척박한 사막 한가운데 이런 아름다운 도성이 있다니, 마루프는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루프는 성문을 지나 거리로 들어섰다. 길 좌우에는 금빛으로 장식된 집들이 빗살처럼 늘어서 있었는데 그 아름다운 집들을 바라보며 걷고 있으려니까 마루프는 마누라한테 쫓기고 있는 자신의 서글픈 처지도 어느 정도 잊어버릴 수 있었다. 마루프는 계속해서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길거리를 오가던 사람들이 호기심에 찬 눈빛들로 힐끔힐끔 마루프를 쳐다보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루프의 차림새가 이 도성 사람들의 그것과는 전혀 딴판이었던 것이다. 『여보시오. 당신은 외국 사람이오?』 행인 중 하나가 마루프에게 물었다. 『그렇소이다』 마루프가 대답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마루프에게로 몰려들었다.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길래 옷차림이 그토록 특이합니까?』 몰려든 사람들이 마루프에게 물었다. 『저는 카이로 사람입니다』 『오, 카이로! 성스러운 도시 카이로!』 사람들은 경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마루프가 말했다. 『카이로라는 말에 그렇게 놀라시는 걸 보니 당신들 중에는 아무도 카이로에 가본 사람이 없는가 보군요?』 『그렇소. 카이로는 너무나 먼 곳에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당신은 언제 카이로를 떠났소? 카이로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도대체 얼마나 걸립디까?』 그래서 마루프는 말했다. 『어제 오후 기도 시간에 떠나왔습니다』 마루프가 이렇게 말하자 둘러서 있던 사람들은 일시에 와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은 마루프의 이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자 마루프는 다시 말했다. 『왜들 웃으시는 거죠? 나는 분명 어제 오후 기도 시간에 카이로를 떠나 오늘 새벽 저 산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마루프가 이렇게 덧붙이자 사람들은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 말을 들어봐. 카이로에서 왔다고 했는데 알고보니 순 거짓말이야. 저 자는 카이로가 어딘지도 모르는 사람이야』 『그러게 말이야. 어제 오후 기도 시간에 카이로를 떠나 여기까지 왔다고 하니 그게 말이나 돼?』 사람들은 이제 마루프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보시오,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다니, 당신은 실성한 사람이 아니면 우리를 놀리고 있는 거요. 어제 오후에 카이로를 떠나 오늘 아침에 여기 오다니, 어쩌면 그렇게 넉살이 좋소? 카이로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적어도 일 년은 걸릴거요』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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