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경수로 첫삽

  • 입력 1997년 8월 18일 20시 20분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드디어 오늘 북한의 함경남도 신포 금호지구에 건설하는 경수로 부지공사의 첫삽을 뜬다. 94년10월 北―美(북―미)간 제네바 핵 합의에 따라 북한에 경수로제공을 약속한지 34개월만이다. 경수로 건설은 한국과 미국 일본 및 유럽연합(EU)의 국제 컨소시엄형태로 추진되고 있지만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분단이후 남북한간의 사실상 최대 공동역사(役事)라고 할 수 있다. 예정된 건설기간 7년동안 남에서 북으로 수송되는 건설기자재 등의 총물동량이 1백만t에 이르고 남북한 근로자들도 연인원 1천만명이 동원된다. 뿐만 아니라 분단이후 처음으로 남한관리가 북한에 상주하고 남북한간에 우편물 교환과 통신이 이루어진다. 남북기업간에 직접 계약을 하고 외환은행 출장소도 북한에 개설된다. 그만큼 안전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지만 한반도 평화의 새 장(章)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만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래도 북한당국의 자세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금호지구에 투입되는 북한 근로자들은 남한 근로자들과 함께 일하며 자본주의체제의 임금을 받는다. 말하자면 남한 근로자들과의 공동생활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체험하는 셈이다. 비록 금호라는 제한된 지역이기는 하지만 그곳에서 이제 막 불기 시작하는 「자본주의 바람」을 북한당국은 어떻게 수용하고 대처해 나갈지, 그리고 그것이 전반적인 개방 개혁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거리다. 북한당국은 이 변화의 바람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개방 개혁정책의 활력소로 삼아야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 북한당국이 더욱 명심해야 할 일은 제네바 핵합의의 차질없는 이행이다. 경수로 핵심부품이 인도되기 전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을 받고 경수로 완공전에 폐연료봉을 제삼국에 이전한다는 약속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핵 투명성에 조금이라도 의혹이 생기면 경수로 사업은 언제라도 파국을 맞을 수 있다. 그럴 경우 북한은 모처럼 온 경제회생의 기회마저 잃게 된다. 경수로건설이 본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험난하다. 50억달러가 넘는 건설비용을 관계국들이 어떻게 분담하느냐하는 문제도 큰 걸림돌중의 하나다. 어차피 한국은 비용분담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도 경수로건설에 따른 눈앞의 이해만 따질 게 아니다. 궁극적으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인만큼 그에 걸맞게 건설비를 분담하는 것이 옳다. 더구나 북한은 대미(對美)관계개선 등을 위해 경수로건설 사업을 보조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거나 체제충격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남북한 관계를 경색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韓美日(한미일) 세나라의 공조체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도 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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