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코프 지음/민음사 펴냄]
사이버 시대의 인류는 1백년 전과 비교하면 생물학적 의미에서 전혀 다른 종(種)으로 분류되지 않을까.
인류는 아주 짧은 기간에 「날개를 가진 후손」이 탄생하는 것에 비견할 만한 급속한 진화단계에 들어섰다.
원자에서 분자로, 분자에서 유기사슬로, 유기사슬에서 단일세포로, 단일세포에서 엽록체로, 엽록체에서 유기체로, 개별 유기체에서 사회와 문명으로 진화해온 과정을 돌이켜보라.
미디어와 통신기술로 네트워크화된 지구촌은 지금까지의 인류와 전혀 다른 「군체적(群體的) 생명체」의 양상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21세기 문화의 진로를 날카롭게 짚은 역작 「사이버리아」 「미디어 바이러스」의 저자 더글러스 러시코프. 그는 3부작으로 이어지는 화제작 「카오스의 아이들」(민음사 옮김)에서 우리는 지금 「어떤 변화에 적응하기보다는 우리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적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전지구적 친밀성」의 시대에 가장 두드러진 문명적 징후는 불연속성과 불확실성의 증가라고 지적한다. 기성세대는 마치 오래 된 유전인자가 돌연변이에 저항하듯 이에 반발하고 있으며 반면에, 자라나는 세대는 이미 「다가오는 미래」에 살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열광하는 「서핑」을 보자. 게임의 유일한 룰은 파도의 불연속성을 타고 흐르는 「불확정성의 원리」. 여기에서는 현실의 거친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어 방정식에 꿰맞추려는 기만과 억지를 찾아볼 수 없다.
이같은 새로운 삶의 양상은 기존의 과학과 수학모델을 파산시켰을 뿐 아니라 그 사회적 함의는 현실의 일부가 됐다.
O J 심슨 사건. 로스앤젤레스 경찰이 심슨을 추적할 때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그 광경을 TV로 지켜봤다. 시청자들은 심슨이 집앞을 지나갈 것을 알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집 밖으로 나와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장면은 그대로 TV에 방영됐다. 시청자들은 스스로 TV 속으로 들어가 자신들이 TV에서 봤던 이야기의 일부가 됐고 그 이야기를 변형시켰다. 이렇게 해서 심슨 사건은 줄거리 자체가 달라져 버렸다.
관찰자가 현미경 밑에 있게 되는, 더 이상 관찰자와 관찰대상의 구분이 불가능하게 된 시대.
저자가 불연속성과 불확실성을 두려워하고 기피하기보다는 오히려 게임으로 즐기는 아이들을 주목하는 이유다. 위험을 피하는 기술인 「스키」보다 위험 자체에 녹아드는 「스노보드」에 매혹당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인류의 신모델이다. 아이들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진화적 미래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