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며칠동안 오른손을 붕대로 친친 감고 회사에 다녔다. 불경기 여파로 회사사무실을 축소해 옮기면서 무거운 짐을 나르다가 손등을 찍혔다고 한다. 좀 심하게 다쳤는지 자면서도 간혹 앓는 소리를 했다. 아내는 아들이 잠들 때까지 옆에 붙어 앉아 부채질도 해주고 물수건 찜질도 해주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밥상머리에서였다. 아들이 불쑥 사표를 내겠다고 했다. 아내와 나는 밥숟갈을 든 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아들은 무엇인가 결연한 표정이었다. 『왜, 회사에 무슨 일이 생겼느냐』 나는 태연한 체하며 물었고 아내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분위기만 감돌았다. 어린 나이에 인생의 출발부터 시련을 겪는 것같아 아들이 가여웠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면 할 수 없지. 너만큼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면 곧 좋은 일자리가 생기겠지』 아들을 향한 위로의 말이지만 실은 깊은 실망감에 빠진 아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신혼시절부터 나도 수 없이 직장을 옮겨다니는 바람에 아내는 고생도 많이 했다. 참고 견뎌야 했지만 한가지라도 옳지않은 일에는 굽히지 못하고 미련없이 사표를 내던지곤 했던 것이다. 『제발 네 아버지는 닮지마라. 네가 세상에 맞추어 살아야지 세상이 널 맞추어줄리는 없다』 아내는 간절히 타일렀다.
그러나 아들은 끝내 사표를 내고 말았다. 차차 알게 될거란 이유만 남긴 채….
그뒤로 아들은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아침에 나갔다 늘 싱글벙글하며 저녁에 돌아왔다. 『어디 좋은 일자리가 있더냐』 아내는 조심스럽게 묻곤 했다. 『염려마세요. 곧 취직하게 될거예요. 그리고 달 거르지 않고 봉급도 꼬박꼬박 갖다드릴거구요』 『이놈아, 큰소리치기는… 꼭 제아버지를 닮아가지구』 그래도 아내는 아들만이 희망이고 꿈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들이 사표를 낸 이유를 알고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들은 붕대감은 손을 들고 출근할 때 복도에서 몇번 사장과 마주쳤단다. 그 때마다 인사를 했지만 사장은 고개만 까딱하고 지나치더라는 것이다. 다음날 또 사장과 마주쳤을 때 아들은 일부러 붕대감은 손을 쑥 내밀며 인사했지만 사장은 역시 위로의 말한마디 없었다고 한다. 단지 그것이 사표를 낸 이유라고 했다.
박용진(건강사회실천운동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