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온 나라의 언어를 서른두 해 동안 기억하는 노력이란 어떤 것일까. 지난 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 시인 마종기씨(58). 그는 봄에 펴낸 「이슬의 눈」으로 편운문학상에 이어 10월 이산문학상을 받는다. 片雲(편운) 조병화, 怡山(이산) 김광섭을 각각 기리는 상. 심사를 맡은 비평가 유종호씨는 『맑은 슬픔, 모국어를 다듬은 애오라지 정성』에 경의를 표했다.
표제시 「이슬의 눈」에는 그 순정이 깃들여 있다. 「가을이 첩첩 쌓인 산속에 들어가/빈 접시 하나 손에 들고 섰었습니다/밤새의 추위를 이겨냈더니/접시 안에 맑은 이슬이 모였습니다」.
그는 고국을 떠나기 전 군의관으로 정치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했다. 일간지 판문점 출입기자였던 그의 아우는 북한기자를 통해 개성의 친지들과 사신을 주고받다 고초를 당했다. 낙담한 아우는 형을 찾아 톨레도에 정착했으나 현지 강도에게 피습당해 숨지고 말았다. 이역에 묻힌 아우의 한국어 묘비를 쓰다듬으며 쓴 조시는 이 시집의 진통을 알려준다.
「동규형 시집 미시령인가 하는 것 좀 빌려줘/너랑 마지막 나눈 말이 이 전화였구나/나도 모르는 곳, 너와 내 말이 끝난 곳/강원도 어디 바람 많은 곳인 모양이던데/(…)/혹시 그곳에 네가 혼자 찾아간 것은 아닐까」.
그는 자기 시에 눈시울 함께 적신 교포들의 편지를 받기도 한다. 『「그 나라 하늘빛에 묻히고 싶다」는 시를 읽었습니다. 사막 위의 내 고독은 고국풍경으로 둘러싸였습니다』(사우디의 한 교포)
그는 아우 무덤 옆에 자신이 묻힐 터를 얻어 놓았다. 그러나 이젠 귀국해 살고프다고 한다. 미시령, 혹은 이슬이 맺히는 모국의 숲에 아우가 기다리고 있을 터이므로.
〈권기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