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단성사(團成社)는 올해 90세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 된 극장이다.
1902년에 세워졌다가 원각사로 명칭이 바뀐 협률사가 있지만 이는 궁중에 설립된 국립극장이므로 순수한 민간극장으로는 1907년 6월4일 탄생한 단성사가 최고(最古)다.
1907년 6월7일자 만세보(萬歲報)는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지명근 박태일 주수영 등의 발기로 연극장을 건축중인데 3일 전에 배우 등을 모아 놓고 단성사라는 회사의 설립취지를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연예인들에게 일터를 주고 수익금은 교육사업과 자선사업에 쓴다는 것이 회사 설립취지였다.
그해 11월에 개관한 단성사의 관람석은 약3백50석에 2층 건물이었는데 이는 남녀를 아래 위층으로 따로 분리해 관람토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화재로 인한 재건축과 증축 등의 과정을 거쳐 1934년 12월 다섯번째로 건축한 건물이 현재까지 내려오고 있으며 3층건물에 9백70석 규모다.
단성사의 역사는 그대로 우리 영화의 역사라고 할 만하다.
1919년 10월27일 연극과 활동사진이 결합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키노 드라마) 「의리적 구토(仇討)」가 단성사에서 개봉됐고 나운규의 「아리랑」(1926년 10월1일),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1935년 10월4일)도 이곳에서 처음 상영됐다.
우리 영화의 흥행기록도 모두 이곳에서 경신되었다. 1965년 기록영화 「역도산」이 32만2천8백80명의 관객을 기록했고 12년 뒤인 1977년 「겨울여자」는 58만5천7백75명의 유료관객을 동원했다.
이어 지난 90년 「장군의 아들」이 67만8천9백46명으로 기록을 바꿨고 3년 후에는 「서편제」가 84만6천4백27명으로 신기록을 세웠다.
1926년 당시 경성시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조선극장 우미관 등을 제치고 최고 인기극장으로 꼽혔던 「한국의 대표극장」 단성사도 이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고 있다. 대형극장들이 늘어나고 미국 직배영화가 위세를 떨치면서 상대적으로 시설이나 규모가 작은 단성사가 점차 위축되고 있는 것.
曺相林(조상림·62)상무는 『이달부터 신도필름에서 독점적으로 영화공급을 하고 있어 사실상 임대극장이 되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하태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