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起亞 제삼자인수 안된다

  • 입력 1997년 8월 5일 20시 09분


기아그룹이 지난달 부도유예협약 대상기업으로 선정된지 한달이 다 되어가는 데도 처리 해결책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채권은행단과 기아측은 머리를 맞대고 회생방안을 짜내기보다 감정적인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 와중에 협력중소업체들의 부도가 이어지고 금융시장 불안정이 지속되는 등 파장은 갈수록 확산될 전망이다. 정부와 금융단은 적어도 기아자동차만은 살린다는 생각으로 향후 처리계획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협상을 통해 걸림돌을 하나씩 제거해야 한다. 기아사태 해법(解法)의 걸림돌은 크게 세가지다. 첫째로 기아를 특정기업에 넘길지 모른다는 각본설, 둘째로 金善弘(김선홍)회장의 퇴진 문제, 셋째는 노조의 동의를 받은 인원감축 계획안 제시다. 姜慶植(강경식)부총리는 5일 기자회견에서 『기아의 제삼자인수는 현정부 임기내에는 추진되기 어렵다』며 사전 시나리오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기아측의 의구심은 여전하다. 정말 각본이 없다면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좀더 적극적으로 이런 의혹을 씻어야 한다. 그것은 정부의 개입과는 다른 차원이다. 경영실패에 책임이 있는 김회장 등 기아 경영진 사퇴를 주장하는 채권은행단의 요구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기아 경영진도 책임을 통감, 위기를 수습하고 나서 언제든지 물러나겠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즉각 퇴진을 약속하고 사표를 내라는 은행측의 강경한 주장이다. 김회장이 당장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는 사태수습의 사령탑으로 김회장만한 사람이 없으며 경영진 퇴진은 곧 기아그룹의 와해를 불러 특정기업으로 넘겨질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기아측은 설명한다. 문책은 사태수습 후에 해도 늦지 않다. 강부총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채권금융단의 기아사태 처리 과정을 보면 각본설을 부인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부도위기에 몰린 배경이나 자금지원 중단, 경영진퇴진 요구 등은 기아의 목조르기로 제삼자인수를 추진하려는 우회적인 전략이라는 인상이 짙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지만 제삼자인수를 전제로 한 기아해법 찾기는 안된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기아가 자력(自力)으로 정상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기아를 정상화시켜야 1만7천여개의 협력업체도 살 수 있다. 그러잖아도 우리 자동차산업은 과잉 중복투자로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향후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은 국제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제삼자인수로 난전(亂戰)을 유발한다면 경쟁력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위기극복에 노사가 모처럼 한마음이 되어 회사 살리기에 나선 기아의 몸부림은 눈물겹도록 처절하다. 기아사태 수습은 제삼자인수가 아니라 기아를 자동차전문업체로 살린다는 대원칙과 노사의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전제로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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