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칼럼]이회창의 선택

  • 입력 1997년 8월 1일 19시 51분


李會昌(이회창)씨는 답답해서 속이 다 탈 지경일 것이다. 버선목이 아니라서 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다. 아들 둘이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사유로 병역을 면제받았으니 못믿겠다는 사람들만 나무라기도 어렵게 돼 있다. 『양심에 비춰 부끄러운 일이 없다』고 아무리 해명해도 믿으려는 기색이 없다. 『마녀사냥 하는 거냐』 『중상이다 모략이다』고 화를 내봐도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다. ▼ 혹독한「아들 병역」 ▼ 세상이 야속하기도 할 것이다. 「대쪽」이니 「법대로」니 하며 칭송받던 때가 언젠데 다른 일도 아닌 아들들의 병역문제로 자신의 상표인 도덕성과 정직성을 의심받게 됐으니 못믿을 건 인심이라고 탄식할지도 모른다. 야당은 두 아들의 병적기록표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 속된 말로 죽을 맛일 것이다. 이회창씨는 이것이 대통령후보로서 그가 통과해야 할 여러 어려운 시험들 중 하나라는 것을 어쩌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앞에는 이보다 더 답답하고 어려운 시험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통령자리를 놓고 그와 건곤일척의 한판 승부를 벌일 야당 후보들은 더 험악한 시험들을 셀 수 없이 치르고 오늘의 자리에 섰다. 그 혼자만 시험을 면제받을 수도 없다. 세상은 냉혹한만큼 공평한 것이다. 금주 초 TV토론회에서 보인 이회창씨의 두 아들 병역문제에 대한 해명은 담담했다. 병역을 기피하기 위해 두 아들이 고의적으로 체중을 줄인 적도 없고 군 당국의 면제 판정과정에 티끌만큼의 불법이나 부정도 개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신한국당 대통령후보 경선에 뛰어들면서 펴낸 책 「아름다운 원칙」에서도 두 아들이 병역법에 정한 정당한 절차에 따라 병역을 면제받았으며 그들의 나라사랑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고 썼다. 키 1백79㎝에 체중 45㎏이라는 수치는 누가 봐도 수상하다. 그런데도 당사자와 「공인(公人) 중의 공인」인 당사자의 부친이 『그것이 사실이다』고 공언한 이상 거짓이라는 확증이 없는 한 의구심이 남는대로 믿을 수밖에 다른 도리는 없다. 그러나 이 미묘한 문제의 파장은 결코 거기서 그치지 않아 보인다. 두 아들의 병역면제에 아무런 법적 하자가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회창씨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혹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어떤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하는 점에 대한 반성이 심각하게 제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지식인사회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이러한 논의의 요점은 대충 이렇다. 대통령은 국가 보위의 책임을 지는 국군 최고통수권자다. 그 대통령의 두 아들이 사연이야 어찌 됐든 분명한 「결격」으로 병역을 면제받았고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세상에 공개됐을 경우 대통령은 과연 떳떳하게 군 통수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자식들을 군에 보낸 수많은 부모들은 아무런 정서적 저항 없이 그 통수권을 수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 法 아닌 도덕성의 문제 ▼ 결국 법을 묻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묻는 질문이다. 권위 도덕성 정당성의 문제는 합법 불법의 차원을 넘는다. 다분히 편법과 부정이 개입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야당측 「이회창씨 대통령후보 사퇴론」과는 질문의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두 아들의 문제에 전혀 양심의 부끄러움이 없다는 대통령후보가 그 문제로 꼭 「진퇴」를 선택해야 할 이유는 없는지도 모른다. 양심 역시 법을 넘기 때문이다. 결국 선택은 전적으로 이후보 자신의 가치관과 도덕적 판단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누가 강요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심판은 결국 국민의 몫으로 남는다. 이것이 지금 대통령후보 이회창씨에게 주어진 어려운 시험의 본질일 것이다. 김종심(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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