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55)

  • 입력 1997년 7월 31일 07시 45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108〉 나라 형편을 두루 살펴보고난 나는 더욱 막막해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그들이 알라를 믿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그 결과 야만인답게 학교도 없고, 그리고 여러 형제가 아내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여러 자매가 남편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얄궂은 풍습을 갖고는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특별한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어서 도무지 내가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나는 왕에게 이 나라의 고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왕은 말했습니다. 『오,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그리고 결코 몸에 피를 흘리시는 일도 없으신 분이여! 실은 이 나라의 북쪽에는 포악한 성격의 야만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그들은 어마어마하게 큰 배로 이루어진 함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양민을 학살하고 식량을 약탈하고, 그리고 여자들을 납치하여 간답니다. 그들이 쳐들어올 때면 우리는 결사적으로 항쟁을 해보지만 그들의 배는 워낙 크고, 그들의 군사는 워낙 악랄하여 당할 수가 없답니다. 그런 난리를 겪을 때마다 백성들은 영원히 늙지도 죽지도, 그리고 결코 몸에 피를 흘리는 일도 없으신 당신이 저 자석산으로부터 내려오셔서 선택받은 이 백성을 저 사악한 무리들로부터 구원해주시기를 기다리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은 우리에게로 오셨습니다』 왕의 이 말을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이 나라 백성들이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튿날부터 나는 왕의 안내를 받으며 이 나라 군사 시설을 둘러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병사들의 숫자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전술이며, 그들의 사기를 나는 아주 꼼꼼하게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나는 두 가지 아주 특이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진작부터 내가 짐작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이 나라에는 조선술이 낙후되어 있어서 적이 쳐들어왔을 때 타고 나가 싸울만한 전함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조선술이 발달된 적은 쉽게 이 나라를 쳐들어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이 섬 나라에 그토록 조선술이 낙후된 데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이 섬의 남동쪽으로 조금만 돌아가게 되면 자석산의 자력이 미치는 해역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렇게 되니 예로부터 쇠를 사용한 커다란 배는 건조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 이 나라 병사들은 특이하게도 활(弓)을 몰랐습니다. 활을 사용할 줄 모른다는 말이 아니라 활이라는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말입니다. 활이 없다는 것은 이 나라 백성들이 전통적으로 수렵을 해서 먹고 산 것이 아니라 비옥한 옥토와 그 옥토를 가로지르는 강 덕분에 진작부터 농사를 짓고 살았기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군사 시설을 둘러보고 돌아온 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새벽잠에서 깨어난나는 붉은 수염을 불러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 이 나라를 침공한다는 저 북방 오랑캐들의 나라를 둘러보러 떠날 생각이다. 그대는 지금 곧 배 한 척과 힘센 뱃사공 네 사람을 물색하도록 하라』 내 말을 들은 붉은 수염은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명령을 거역할 수 없는 그는 곧 내가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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