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생생히 숨쉬는 집.
경기 양평 양수리 주택 「사미헌(沙彌軒)」은 요즈음 대부분의 도시사람들이 꿈꾸는 이른바 전원주택이다.
산책할만한 거리에 북한강이 흐르고 강변의 포장도로에는 카페에서 걸어놓은 플래카드들이 운동회날처럼 즐비하지만 그러한 번잡함은 도시에 살던 이들이 외로움을 타지 않을 만큼 적당히 멀다.
두 개의 산줄기가 남겨놓은 작은 밭들 사이로 길이 나 있고 그 끝은 멀리 보이는 큰 산 깊은 계곡을 향해 이어진다. 뒤쪽에는 여름에 등목하기 좋을만큼 아늑한 시냇물이 있다.
이 집은 작업실을 뺀다면 그리 넓은 집도 아니며 고급스럽지도 않다. 의복에 비유한다면 따뜻하고 편안하며 허름한 옷에 속한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닫혀 있는 것 같은 이 집에서 집주인이 바라고 설계자가 의도한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 이웃은 물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까지 열려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는 집 배치와 중요한 관계가 있다.
사미헌의 향(向)은 집주인의 화실작업에 햇빛의 영향을 덜 받고 집앞에서 꺾어지는 길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기 위해 정동향으로 했다. 그리고 이 향의 문제는 집전체의 배치뿐만 아니라 내부공간 구성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우선 집앞의 점점 높아지는 길로부터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길쪽에 긴 벽을 두고 개구부는 아이레벨을 피해 위와 아래에만 두었다. 즉 집 전체의 배치나 내부 처마밑 외부공간 등의 방향은 길을 향하여 나란하게 놓여졌지만 그 각각의 공간들은 모두 옆으로 열리도록 계획됐다. 그 결과 이 집은 내부와 외부를 굳이 나눌 필요가 없는 집이 됐다.
작고 큰 공간들이 집밖의 자연을 닮게된 것이다.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개울은 개울대로, 바위는 바위대로 있는 자연인 셈이다.
그러나 이 집이 자연을 닮을 수 있게 된 가장 큰 비밀은 사실 햇빛에 있다. 이 집에서 햇빛은 동향인 덕에 아침녘에는 곡면천장에 드리우는 깊은 빛으로, 저녁녘에는 건물 앞벽의 뒷면에 반사광으로 들어와 만지고 싶은 곳을 어루만져 시멘트블록과 나무 철근 양철지붕 등 거칠고 원시적인 건축재료들에 생명을 준다.
이 값싸고 거친 재료들은 그들 나름의 질감을 드러내며 이 집에 사는 이들이 꿈꾸는 삶을 들려준다. 집 자체, 벽, 창문, 햇빛 그리고 그 너머에.
주대관<엑토종합건축사무소 대표>
▼ 약력 ▼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 졸 △환경동인 건축문화설계연구소 근무 △장기곶등대박물관 설계경기 당선 △서울산업대 건축설계학과 겸임교수 02―553―2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