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42)

  • 입력 1997년 7월 17일 08시 35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 〈95〉 배는 점점 더 빠르게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배가 빨리 달렸던지 돛대며 마스트며 공기의 저항을 견디지 못하는 것은 모두 부러져 내렸습니다. 이윽고 저 멀리 뱃머리 쪽에 거대한 바위산 하나가 나타났습니다. 그때부터 배는 더욱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였습니다. 배가 어찌나 빨리 달렸던지 마침내는 수면에서 떠올라 허공을 날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거대한 배가 허공을 날아가다니, 정말이지 기가 막힌 조화였습니다. 그러나 배가 허공을 날아가는 시간은 극히 짧았습니다.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배는 까마득하게 높은 바위 산 꼭대기로 날아가 박혔습니다. 그와 동시에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배에 실려 있던 상품들은 가파른 절벽을 굴러 바닷속으로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선장을 비롯한 많은 상인들도 물건들과 함께 바위 절벽을 굴러 바다에 빠져 죽었습니다. 개중에 운이 좋은 사람들만이 가까스로 해안에 기어올라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나도 목숨을 건진 운 좋은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뭍으로 기어올라 쳐다보니 깎아지른 듯한 높은 바위 절벽에는 무수히 많은 배의 잔해들과 갖가지 쇠붙이들이 달라붙어 있어서 그 모양이 기묘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바위 절벽 전체가 거대한 자석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타고왔던 배도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듯이 위태로운 모습으로 바위 절벽에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바위 절벽 못지않게 놀랍고 기괴한 것은 우리가 서 있는 바닷가였습니다. 우리가 기어오른 그 좁고 험준한 바닷가에는 수많은 배의 잔해들이며 짐짝들이며 사람의 유골 따위가 선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오랜 세월을 두고 이 근방 해역을 항해하던 배들이 그 거대한 자석 산의 자력에 휘말려 난파되었고, 그 배에서 쏟아져내린 물건이며 시체들이 바다 위에 부유하다가 마침내는 파도에 떼밀려 이 해안에 쌓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던지 말로는 이루 표현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 기괴한 풍경에 넋을 잃고 있던 우리는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모여들기는 했지만 처음 한동안 누구도 입을 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 그 기괴한 바위 절벽 아래에서부터 무사히 살아 고향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 말입니다. 아주 오랜 뒤에야 누군가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중얼거렸습니다. 『대체 여기가 어디쯤이나 될까?』 그의 이 말에 대하여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시 오랜 침묵이 흐른 뒤 다른 누군가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 바위 절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러나 이 말에 대해서도 누구 한사람 응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있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밤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갖가지 물건들과 시체 더미 위에 웅크리고 누워 언젠가는 우리도 이 쓰레기더미 위에 쌓인 또 다른 시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잠들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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