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어제오늘]서울 오류동 주막거리

  • 입력 1997년 7월 15일 08시 14분


오동나무와 버드나무가 많다 해서 이름붙여진 서울 구로구 오류동(梧柳洞)에 있던 주막거리는 구한말에는 상당한 번화가였다. 지금은 공장이 많은데다 경인국도변에 유허비(遺墟碑)만 서 있어 옛날의 번화가임을 알기 어렵다. 오류동은 오래전부터 사신들이 인천항을 통해 뱃길로 중국을 오갈 때 쉬어간 곳으로 1883년 인천항 개항 후에는 상인들이 북적거렸으며 인근지역 생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인천항에서 서울까지는 1백여리로 부지런히 걸으면 이른 아침에 떠나 저녁에 닿을 수 있어 대개 행인들은 오류동 주막거리에서 점심을 먹었다. 출발이 늦거나 급하지 않은 사람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도 했다. 주막만 수십채 있었고 이곳에서 노자를 많이 쓴 사람은 『오류주모에게 간 씹혔구나』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1886년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에서 귀국할 때 이곳 객사에 머물렀으며 청일전쟁때 일본군이 이곳을 거쳐갔다. 이곳을 지나는 옛날의 경인로는 폭이 2m에 불과해 수레가 다닐 수 없어 주로 말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 1882년의 조사에 따르면 운임이 말을 타면 2원50전, 4명이 드는 가마를 타면 3원72전이었고 짐을 싣는 태마를 한마리 부리면 1원8전이었다. 이 주막거리는 1893년 경인로가 확장돼 수레가 운행되고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쇠락하기 시작해 점차 주막이 없어졌다. 대원군이 머물렀던 객사는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살았고 해방 전후에는 전국 무당본부가 들어서 있기도 했다. 〈조병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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