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송재숙/시아버님의 냉장고

  • 입력 1997년 7월 9일 07시 46분


우리집 냉장고는 작지만 나에게는 얼마나 큰 냉장고인지 모른다. 우리집의 막내 나이와 같은 만10년의 이 조그마한 냉장고는 아들의 칠판이기도 해 손때가 묻어 있는데 지금은 이 세상에 안계신 시아버님이 주신 선물로서 우리집의 보물이다. 10년전의 이야기다. 그 당시 우리집 형편은 정말로 어려웠다. 남편의 얇은 월급봉투로는 냉장고는커녕 세탁기도 들여놓을 수 없었다. 가전제품이라고는 12인치 TV와 다리미가 전부였다. 냉장고 대신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넣어 사용하곤 했다. 월세방에서 8백만원의 전셋집으로 이사하는, 우리 막내가 태어나 백일을 맞게 됐을 때인 어느날 집앞에 트럭이 한대 서더니 차에서 냉장고를 내리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언제나 저런 냉장고를 살 수 있을까 부러워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이 집이 김씨 댁입니까』하며 우리집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남편 이름이었다. 나는 『아저씨. 잘못 배달됐나 봐요. 우리는 냉장고 산 적 없어요』했더니 어떤 할아버지가 대금을 지불하고 우리집으로 배달해 달라고 했단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면서 일단 냉장고를 집으로 들여놓고 혹시나 하여 시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어떻게 된 거예요』하고 여쭈었더니 『곧 막내 손자녀석 백일도 돌아오는데 냉장고도 없이 음식을 보관하기 힘들 것 같아 내가 샀다』고 하셨다. 나는 목이 메어왔다. 가슴에서부터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버님의 그 돈이 어떤 돈인가.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을 안쓰시고 한푼두푼 아껴 모은 게 아닌가. 『아버님 고맙습니다. 그 보답으로 열심히 열심히 살게요』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님은 저 세상으로 가셨다. 우리는 아버님의 자상한 보살핌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았다. 그 뒤 집도 장만하고 어느 정도 형편이 나아졌지만 그 냉장고는 지금도 변치않고 우리 집을 지키고 있다. 아무리 대형냉장고가 쏟아져나와도 나는 아직 아버님께서 사주신 작은 냉장고를 아주 소중하게 쓰고 있다. 주위의 사람들이 큰 냉장고로 바꾸라고 해도 나는 다른 것은 다 바꿔도 이 냉장고만은 절대로 안된다고 버틴다. 송재숙(서울 용산구 보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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