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工期단축 능사 아니다

  • 입력 1997년 6월 28일 20시 19분


대법원이 공기(工期)단축을 강요하는 건설공사 발주관행에 제동을 걸어 눈길을 끈다. 대법원은 최근 대전 유성구청이 한 건설회사에 요구한 지체보상금 9천4백만원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유성구청이 대전엑스포에 맞추기 위해 유성온천 개발공사를 적정기간보다 넉달이나 앞당겨 끝내라고 요구하고 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상금을 물린 것은 반사회적 법률행위라고 판시했다. 삼풍백화점 붕괴대참사 2주년을 맞는 시점의 판결이어서 더욱 그 의미가 돋보인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 대형 구조물들이 무너져내린 부끄러운 사고의 근본 원인은 부실공사에 있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설계를 수시로 변경하는 것이 통하는가 하면 몇 단계의 하청으로 공사비를 떼먹는 작태도 우리 건설업계의 해묵은 악습이다. 그런가 하면 설계도대로 짓지 않아도, 자재를 제대로 쓰지 않아도 감리회사가 눈감고 적당히 준공검사를 내주는 관행이 부실공사를 부추겨 왔다. 그러나 그 모든 비리의 바탕 위에 공기단축을 능사로 여기는 무리가 총체적 부실의 한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건설회사가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 스스로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한 경우에 대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발주기관의무리한공기단축요구에제동을 거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나 부실공사를 초래할 수 있는 무리한 공기단축은 반사회적 폐습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발주자의 공기단축요구는 물론 건설업체가 스스로 공사를 서두르는 관행에도 제동을 걸 수 있는 감시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무작정 빨리만 짓는 것은 이제 자랑이 될 수 없다. 서울시민의 63%가 삼풍참사 뒤에도 건축물의 안전도가 나아진 게 없다고 대답한 한 여론조사를 건설업계는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대형 붕괴사고가 또 일어나서는 안된다.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쌓지 못한다면 개방시대에 우리 건설산업은 설 땅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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