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417)

  • 입력 1997년 6월 20일 08시 26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 〈70〉 그 도시는 비록 작기는 하지만 어느 구석을 돌아보아도 그림처럼 아름다웠습니다. 덩굴장미로 뒤덮인 담 사이로 난 포도(鋪道), 수많은 비둘기들이 하얗게 날아앉아 모이를 쪼고 있는 광장, 갖가지 꽃들로 뒤덮인 공원, 흰 대리석 기둥과 황금빛 돔을 가진 사원, 온갖 형상을 아로새긴 조각품들로 장식된 분수, 어느 것 하나 감탄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남자들은 하나같이 미남이었고, 여자들은 갓 피어난 수련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그 아름다운 나라를 둘러보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지상에 이런 아름다운 도시가 있었다니! 이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그 아름다운 도시에 홀려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마침내 항구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항구로 돌아가보니 내가 타고왔던 배는 그 사이에 떠나버리고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처음에 나는 여간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비록 한푼 없는 알거지 신세라 할지라도 이 낯선 도시에 혼자 떼어두고 가버릴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생각해보면 나는 그들을 탓할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배를 무임승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제공하는 음식과 옷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그들의 신세를 지며 살아가야 할 형편이었으니까요. 나로서는 그 지긋지긋한 「샤이후 알 바르」섬에서 구출돼 이 아름다운 왕국에까지 데려다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니까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는 마침내 발길을 돌려 거리로 되돌아갔습니다. 다시 돌아와서 보니 그런데 그 도시에는 좀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처음에 보았을 때는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지만, 다시 와서 보니 이 도시의 사람들은 전혀 의욕이 없어 보였습니다. 멀쩡한 젊은 남자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빈둥거리며 낮부터 술이나 마시고 있었고, 여자들 또한 어딘지 모르게 태만해보였습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짜증과 불만이 가득했으며 사는 것도 모두 귀찮다는 표정들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같은 외국인에 대해서 호기심을 나타내는 일도 없었습니다.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 무슨 까닭에선지는 모르지만 싸움질을 하는 사람, 불만에 찬 목소리로 무어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소리치는 사람, 누구 하나 생기에 찬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행복할 거라는 내 추측은 틀린 것 같았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다니던 나의 발길은 어느덧 시장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활기가 없기로는 시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닥에 대리석을 깐 회랑을 따라 나 있는 넓은 시장은 대단히 유서깊다는 것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만, 물건을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없으니 을씨년스럽기만 했습니다. 그 텅 빈 시장을 둘러보면서 나는 비로소 내가 타고 왔던 배가 왜 그토록 서둘러 떠나버렸던가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살 것도 팔 것도 없으니 공연히 시간만 낭비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겉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이 나라는 서서히 허물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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