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이종수/「두 젊은이」의 죽음앞에…

  • 입력 1997년 6월 10일 10시 12분


이름없는 두 젊은이의 죽음 속에서 녹슨 기억의 저편을 연상하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돌과 최루탄 화염병 그리고 각목과 쇠파이프… 매캐한 연기 가시지 않은 아스팔트 위 지나간 역사의 파편들만 차디찬 죽음처럼 흩어져있고… 12년전 나는 그 교정 그 함성을 기억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 그 외침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누구의 피던가. 그것은 저들이 아닌 우리들의 피였다. 타인의 희생이 아닌 우리들의 희생 속에 민주주의는 성숙된다는 믿음이었다. 전경의 피흘림을 보고 승리감에 도취된다면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그것은 폭력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자각에서 시작되었다. 왜 깨어지는 아픔을 두려워 하는가. 왜 폭력의 옷을 입으려 하는가. 폭력의 시위가 죽인 것은 한 젊은 생명이며 민주주의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깊은 참회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정녕 두 젊은이의 죽음에 정치인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단 말인가. 학생들의 주장이 폭력으로 드러날 때까지 그네들은 무엇을 했던가. 학생들의 주장을 모두다 반국가적 행위로 몰아버리는 획일성과 경직성 그것은 또다른 이름의 폭력이 아니었던가. 부정과 부패로 허약해질대로 허약해진 이 사회 그래서 목청껏 소리쳐 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이 사회, 누가 이 꼴로 만들었던가. 젊은이의 죽음이 어찌 학생들만의 것인가. 그 뒤에는 아직 청산되지 않은 정치권의 권력독점 의식이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분노할 자격이 있는가. 권력의 부패와 반민주성에는 그렇게 관대했던 우리, 권력의 독점에 의해 정경유착은 뿌리깊어지고 이로인해 경제는 파탄에 이르고 수많은 중소기업의 사장들이 죽어갈 수밖에 없는 비참한 상황에 그토록 무관심했던 우리가 과연 분노할 자격이 있는가. 오늘 두 젊은이와 영별하며 죽었던 나의 양심과 의식을 일깨워보려 한다. 그들의 죽음이 이 땅에 참 민주주의의 꽃으로 피어나길 기대하며… 이종수(도서출판 우리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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