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窓]세 여중생 「후회뿐인 가출」

  • 입력 1997년 6월 1일 20시 25분


지방 여중2년생 이모양(14)은 지난달 25일 오후 난생 처음 읍내구경을 했다. 같은 반 친구 백모양(14)과 김모양(13)이 『생일잔치를 열어주겠다』며 손을 잡아끌었다. 떡볶이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니 다들 우울해졌다. 무섭기만한 선생님, 농사일에 시달려 자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부모님…. 『우리 돈벌어 신나게 살자』는 백양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의기투합한 이들은 시장통을 돌며 일자리를 찾았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이 G단란주점. 『너무 어리다』며 주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심히 일할게요』하고 사정해도 주인은 끄떡없고 열대여섯 돼 보이는 남자 종업원 셋만 힐끔힐끔 눈길을 줬다. G주점을 나와 노래방 단란주점 열군데를 기웃거렸지만 마찬가지. 어느덧 인적이 끊기고 사방은 캄캄해졌다. 「그냥 집에 돌아갈까…」. 막막한 심정으로 길가에 서성거리고 있을 때 G주점에서 본 남자애들 셋을 만났다. 『갈데 없으면 같이 놀자』는 말이 반가웠다. 당구도 구경하고 노래방에서 노래도 불렀다. 그리고 온몸이 파김치가 됐을 무렵 여관에 끌려가 일을 당했다. 한나절을 실컷 울고나니 은근히 오기가 생겼다. 또다시 하루종일 일자리를 구해보았으나 허탕. 유원지 근처 파출소에서 밤을 지샜다. 『서울로 가보자』 27일 저녁 상경한 이들은 S백화점 뒤 P노래방의 문을 두드렸다. 『오늘은 눈좀 붙이고 내일부터 일해라』 주인 정모씨(37)가 따뜻이 맞아주었다. 룸에 들어가 지친 몸을 뉘자마자 곯아 떨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백양의 비명에 깨어났다. 정씨가 백양의 몸을 더듬고 있었던 것. 서로 끌어안고 울고 있을 때 경찰이 들이닥쳤다. 경찰서에서 또 하룻밤을 보냈다. 날이 밝자 부모님들이 올라오셨다. 『저 사람(정씨)보다는 저희가 죄인이지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글썽이는 아버지. 『아니예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이럴줄 몰랐어요』 이양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철용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