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95)

  • 입력 1997년 5월 28일 08시 00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48〉 해변에는 그런데 노인 한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 동료들을 방목하고 도망자를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마음 속으로 이제 도망가는 것도 틀렸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노인은 나를 향하여 무어라 손짓을 해 보였습니다. 그의 손짓은 나에게 오른쪽 길을 따라 가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 나는 노인의 지시를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곧 그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는 내가 나의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아직 이성을 잃지도 않고 실성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같았습니다. 나는 노인이 지시한 대로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일단 그 길로 접어든 뒤에는 두려움으로 줄달음을 쳤습니다. 한참을 달려가다가 뒤돌아보니 이제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뛰다가 걷다가 하기를 몇 시간, 어느새 해가 지고 땅거미가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잠을 좀 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배고픔과 피로와 공포 때문에 한숨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밤중에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윽고 아름답게 단장한 새벽이 찾아왔습니다. 치솟은 산봉우리들을 넘어 태양은 눈부신 모습으로 얼굴을 내밀어 자갈이 깔린 들판을 비스듬히 비추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른 데다가 몸은 지칠 대로 지쳐 버렸기 때문에 한 발짝도 더 걸을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이슬에 젖은 풀잎들을 마구 뜯어 입에 집어넣었습니다. 오랫동안 풀을 뜯어 먹던 나는 이윽고 풀섶에 쓰러져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십분도 못되어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나는 나무뿌리와 풀로 굶주린 배를 달래며 계속해서 걸었습니다. 이렇게 일곱 낮, 일곱 밤을 걷고 여드레째 되는 날 아침에서야 나는 저 멀리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멀어서 어슴푸레하게 보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죽도록 고생을 하고 위험한 고비를 넘긴 끝이라 더 이상 한 발짝도 걸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만 설레는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들에서 후추를 따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를 발견한 그들은 급히 달려와 나를 둘러싸고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어디서 오는 길이오?』 그러나 나는 너무나 배가 고프고 지쳐 있었기 때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내 모습을 보자 사람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갖다주었습니다. 그것을 먹고 마신 뒤에야 어느 정도 기운을 얻어 나는 말했습니다. 『나는 타국에서 온 나그네랍니다』 이렇게 말하고 난 나는 지금까지 겪은 갖가지 고난을 모두 털어놓았습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일동은 몹시 놀라며 내가 그 위험에서 살아온 것을 기뻐해 주었습니다. 『이 섬에 우글거리면서 사람을 붙잡기만 하면 모조리 잡아먹는 그 야만인들의 손에서 도망을 쳐 나왔다니! 이건 알라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오』 <글:하일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