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매맞는 아내

  • 입력 1997년 5월 22일 19시 59분


수많은 여성들이 남편에게 매를 맞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살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국무총리 효부상을 받은 주부가 부부싸움 끝에 숨졌고 18년동안 계속된 구타를 견디다 못한 주부가 남편을 살해했다. 여성단체들은 길거리에서 「매맞아 죽은 여성들을 위한 위령제」를 열었다. 가정폭력은 사소한 「남의 집안일」이 아니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숨어 인권을 짓밟는 비겁하고 가증스러운 범죄다. 상담소를 찾는 가정주부의 60% 이상이 남편으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그중 30% 정도가 폭행을 당하는 등 심각한 상태라면 그 사회는 위태로운 사회다. 아내구타에는 대체로 자녀학대가 동반되고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의 70% 이상이 어머니가 맞는 것을 보고 자란 사람이라고 한다. 이쯤되면 가정폭력은 사회가 나서서 막아야 할 범죄라는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선진 외국에서는 70년대부터 특별법을 제정해 가정폭력에 대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여성발전기본법에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대책 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작년에는 정부차원의 가정폭력방지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성계의 입법청원으로 국회에 계류중인 가정폭력방지법안은 다른 법안에 밀려 심의조차 안되고 있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투철하지 못한 탓이다. 상습적인 가정폭력은 일종의 정신질환 행위다. 이들 비정상적 폭력행위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는 나약한 여성과 아동들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다. 가정폭력에 경찰이 출동하여 개입하고 폭력행위자를 격리 교육시키는 제도를 시급히 법으로 마련해야 한다. 피해자들의 단호한 초기대응도 중요하다. 한번 맞으면 평생 맞는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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