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랭킹 34위의 대농그룹이 자금난에 못견뎌 사실상 부도 상태에 빠졌다. 금융단의 부실징후기업 지원대상으로 지정돼 가까스로 도산은 면했지만 대기업 부도 도미노 공포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재벌이 이젠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정부는 재벌정책을 전면 재검토해 산업구조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재벌들도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위기극복에 앞장서야 한다.
대농의 부도 원인은 복합적이다. 자산을 초과한 1조8천억원의 총부채에다 10여년간 계열사를 5개에서 21개로 불린 문어발식 기업확장, 경영환경 변화에 부응하는 구조조정의 실패, 2세경영의 실책 등이 위기를 자초했다. 미도파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공세를 막느라 1천3백억원을 쏟아부은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이런 부실요인이 모든 재벌에 공통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작년에 30대 재벌중 13개 그룹이 적자를 냈고 이들의 부채총액은 무려 2백70조원이다. 그런 가운데 30대 재벌은 작년에 계열사를 1백50개나 늘렸다.
재무구조와 채산성은 갈수록 악화하는데도 재벌들의 백화점식 확장경영이 사라지지 않는 데는 정부의 재벌정책에도 책임이 있다. 계열사간의 얽히고 설킨 상호출자와 지급보증으로 어느 한 곳만 무너지면 그룹 전체가 망하는 선단식(船團式) 경영형태가 방치되고 있다. 문어발식 방만경영을 가능케하는 편중여신과 상호지급보증 상호출자 등에 대한 규제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재벌의 힘에 밀려 더이상 정부의 재벌정책이 갈팡질팡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연쇄부도나 실업 등 파장을 우려해 대기업의 부도처리를 가급적 억제해오던 종래의 방침을 수정한 건 바람직하다. 그러나 한보 삼미 진로 삼립식품에 이어 대농까지 부도가 남으로써 경제에 미치는 파장은 심각하다. 구조조정기에 어느 정도 희생은 감수해야 하나 이를 최소화할 정책노력이 필요하다. 재무구조개선 목표를 제시하고 주력기업 위주의 구조조정 방향을 정한 뒤 이에 따르지 않는 재벌에 대해 자금지원 중단 등 불이익을 주는 큰 원칙을 마련해 운용할 수도 있으리라고 본다.
재벌도 이젠 정신차려야 한다. 재벌을 부도야 내겠느냐는 배짱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빚얻어 계열사 늘리고 호황때 돈 벌어 부동산에 투자하는 식의 경영은 시대착오적이다. 중소기업형 업종은 과감하게 처분하고 세계일류가 가능한 전문업종을 중심으로 기술개발투자에 주력, 경쟁력을 갖추는 게 재벌이 할 일이다. 부도위기에 처하기 전에 부동산이나 계열기업을 정리하는 군살빼기에 나서야 한다. 기업이 어려울 때 자신이나 가족의 주식을 먼저 처분하는 경영주가 보이지 않는 것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