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81)

  • 입력 1997년 5월 13일 08시 04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 〈34〉 배도 물건도 모두 탈취당한 채 낯선 섬에 버려진 우리는 나무 열매를 먹고 개울물을 마시며 목숨을 연명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나의 입장에서는 지난 두 번의 항해 때 당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는 그래도 혼자 섬에 남겨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일행의 숫자는 무려 오십 명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어느날 우리 일행은 섬 한가운데에 인가처럼 보이는 집 한 채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걸 보자 우리는 이제 살길이 생겼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다투어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것은 뜻밖에도 견고하게 방비가 되어있는 높은 성채였습니다. 사방에는 까마득히 높은 성벽으로 둘러처져 있고 성문은 두껍고 튼튼한 흑단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성문은 좌우로 활짝 열어젖혀져 있고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그 높은 성채를 올려다보면서 놀란 얼굴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외딴 섬에 이런 거대한 성채가 있다니. 게다가 아무도 지키는 사람이 없다니,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아』 우리들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하나가 말했습니다. 『설마하니 아무 죄도 없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으려고? 성채 안에는 그래도 뭔가 먹을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그러자 또 다른 하나가 말했습니다. 『그 말이 맞아. 밖에서 굶어죽는 것보다야 낫겠지』 이렇게 옥신각신 토론을 하던 끝에 결국 우리는 성채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하였습니다. 성채 안은 흡사 넓은 광장처럼 드넓고 휑하니 비어 있었습니다. 그 광장 주위에는 여러 개의 문이 달려 있었는데, 그것들은 하나같이 열어젖혀져 있었습니다. 그 한 쪽 편에는 돌걸상 하나와 화로 몇 개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화로 곁에는 몇 가지 요리기구가 걸려 있고 주위에는 온통 동물의 뼈다귀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채 안 어디에도 사람의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성채 안은 뭔가 기분 나쁜 구석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 큰 성채가 텅 비어 있다는 것이 그렇고, 그런데도 화로와 요리기구가 있다는 것이 그렇고, 그리고 화로 주변에 쌓여 있는 뼈다귀들이 그랬습니다. 게다가 동물의 털을 불에 태우기라도 했는지 노린내가 배어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배와 짐을 빼앗기고 나무 열매와 개울물로 연명해온 우리는 심신이 지칠대로 지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성채 안마당 그늘 속에 모여앉아 저마다 다리를 뻗고 쉬었습니다. 그렇게 앉아 쉬고 있으려니까 졸음이 몰려왔고 그리하여 우리는 해질 무렵까지 세상 모르고 곯아떨어져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때였습니다. 땅이 흔들리는 심한 진동과 무시무시한 굉음에 놀라 우리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깨어나보니 인간처럼 생긴 거대한 괴물 하나가 성 꼭대기에서부터 우리가 누워 있는 안마당으로 뛰어내려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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