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청문회를 보고]이석연/『의원들 자세가 더 문제다』

  • 입력 1997년 5월 1일 19시 54분


이번 청문회에서는 그 제도적 결함못지 않게 운영상의 문제점을 더욱 크게 지적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청문회에 임하는 의원들의 기본자세다. 청문회는 국민적 의혹을 벗기고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헌법상 국정통제의 일환이다. 그런데도 여야 할 것 없이 자기 당의 실세증인에 대한 아부성발언과 혐의벗겨주기 질문 등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청문회를 이용했다. 상대당을 흠집내려고 열중하다 보니 사소한 일로 삿대질을 하는 볼썽사나움도 잦았다. 그래서 오히려 증인들의 「사기」를 돋워 주기도 했다. 특히 김현철씨 증언을 앞두고 신한국당이 만들어 자당 의원들에게 배포했다는 「김현철 신문지침」은 책임있는 정당이자 국민의 대표라는 「자존심」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신문방법도 증인들의 불성실한 답변이 충분히 예상됐던 만큼 의원 각자가 역할을 분담해 질문했어야 했다. 예컨대 김현철 관련 의혹에서 △이권개입 △인사개입 △대선자금유용의혹 등을 구분하고 이권 개입분야도 다시 △케이블TV선정 △지역민방 △2천억원 리베이트설 등으로 나눠 집중적으로 질문했다면 훨씬 효율적이었을것이다. 그렇지 않다보니 청문회시작 2시간정도가 지나서부터 중복질문을 쏟아냈다. 심지어 증인으로부터 벌써 몇번째 같은 질문이냐는 불평까지 듣는 경우도 있었다. 증인의 답변을 잘 듣고 있다가 그 말의 꼬투리를 잡아서 새로운 사실을 추궁하려는 진지한 자세도 부족했다. 증인을 피의자 다루듯 윽박지르고 모욕감을 주는 신문관행도 당연히 고쳐야 한다. 또 사생활을 침해하는 질문도 피해야 한다. 공적인물이 아닌 일반인의 사생활보장은 면책특권보다 우선하는 기본권이다.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우리도 외국의 경우처럼 청문회에서 진실을 은폐하는 증인과 청문회를 당파적으로 운영하려는 정치인 모두 사회적으로 영원히 매장된다는 국민적합의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李石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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