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354)

  • 입력 1997년 4월 14일 07시 59분


제8화 신바드의 모험 〈7〉 배가 사라지자 나는 이제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졌다는 것이 새삼스레 실감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그 옛날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종종 내게 하셨던 말씀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행복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을 꿈꾸지 말아라. 그런 것을 꿈꾸게 되면 남들은 생각할 수도 없는 고생을 하게 마련이란다」라고 하셨던 말씀 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말씀을 유념하지 않고 가산을 탕진한 뒤 이 위험한 여행길에 올랐던 것이 그때처럼 후회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물결을 따라 떠돌고 있는 동안 어느덧 해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어둠이 몰려왔습니다. 그때부터 바람이 일기 시작했고, 나는 밤새도록 바람과 파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가하면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물고기들은 나의 발을 물어뜯었습니다. 이튿날도 그 이튿날도 정처없는 표류는 계속되었습니다. 무자비하게 쏟아져내리는 태양볕과 밤의 추위, 갈증과 허기, 공포와 절망감 속에서 열흘 동안의 표류를 한 끝에 나를 태운 나무통은 어느 오뚝한 섬 한쪽 기슭에 당도하였습니다. 바닷가 언덕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서 수면에 가지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뭇가지를 움켜잡고 가까스로 뭍으로 기어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뭍으로 올라가기는 했지만 지칠대로 지친 나는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해가 떠오르자 그 온기로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리는 퉁퉁 부어올라 있고 물고기들한테 물어뜯긴 발은 참혹하리만큼 찢겨 있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앉은뱅이처럼 엉덩이를 끌거나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어서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찾아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그 섬에는 과일들이 풍성했고 맑은 물이 샘솟고 있었습니다. 나는 과일들을 먹고 물을 마셔 어느 정도 기운을 차렸습니다. 이렇게 며칠을 지내니 차차 생기가 돋고 기력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기력을 되찾게 되자 나는 섬을 탐험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전능하신 알라께서 만들어주신 자연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달래보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꺾어 몸을 의지할 지팡이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지팡이에 의지한 채 절뚝거리며 섬을 둘러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며칠을 두고 나는 섬 구석구석을 둘러보았습니다만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섬은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무인도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외딴 섬에 혼자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새삼스레 눈 앞이 아득해졌습니다. 이제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나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해변에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행여 배가 지나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언제나 텅 비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해변을 걷고 있으려니까 저 멀리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짐승이 아니면 바다의 괴물일 거라는 생각을 하며 가까이 가 보니 그것은 고삐에 매여 있는 한 마리의 훌륭한 암말이었습니다. <글:하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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