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헤일-봅혜성과 새로운 세기 『공포』

  • 입력 1997년 4월 2일 19시 52분


▼요즘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인류의 재앙을 다룬 영화들이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외계인의 침공을 소재로 한 「인디펜던스 데이」나 화산폭발 참사를 그린 「단테스 피크」 등은 우리 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재앙에 맞서 싸우는 인류의 노력은 예술창작의 전통적 소재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21세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이같은 현상은 지구 곳곳에 팽배한 세기말(世紀末)의 불안한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역사적으로 세기말은 늘 우울한 분위기였다. 꼭 1백년 전인 19세기말 유럽에서는 「세기말 사조」가 크게 퍼졌다. 시 소설 회화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쳐 염세주의와 퇴폐주의 향락주의가 두드러졌다. 『신은 죽었다』고 외친 철학자 니체의 사상이 큰 호응을 받았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당시 유럽사회는 취업난과 빈부격차, 도덕성 붕괴문제가 매우 심각했다. 묘하게도 현 상황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95년7월 미국에서 헤일―봅 혜성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일부 천문학자들은 20세기 최대규모의 혜성을 찾아냈다는 기쁨보다는 이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지 모른다는 충격적인 예측을 먼저 내놓았다. 이 예측은 결국 잘못된 것으로 드러났지만 당시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설마 하면서도 내심 불길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천국의 문」 신도들의 집단자살은 세기말적 불안감이 혜성 출현과 관련해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백년씩 나눠지는 세기 구분은 인류가 계산하기 편하게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과학의 발달에 따라 혜성 안에서 불꽃이 용솟음치는 장관을 TV화면을 통해 생생히 들여다볼 수 있는 오늘날에도 새로운 세기에 대한 공포감은 왜 생길까. 아마도 미래정보사회에 대한 불안 공해 핵문제 등 어둡기만 한 현실이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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