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융실명제 보완방향은 실명화 하는 지하자금의 출처조사는 면제하되 돈세탁방지법을 만들어 검은 돈 거래를 차단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명화 유도를 위해 과거는 묻지 않지만 향후의 지하자금은 철저히 단속 처벌한다는 것이다. 실명제의 기본골격은 크게 훼손하지 않아 일단 큰 무리는 없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검은 돈에 지나친 면죄부(免罪符)를 주고 분리과세를 대폭 허용키로 한 것은 금융실명제의 궁극적 목표인 공평과세와 형평성의 원칙에 크게 어긋난다.
종합과세 최고세율인 40%만 물면 금융소득을 종합과세 대상에서 제외, 분리과세하고 국세청 통보도 않기로 한 점이 형평성 문제의 대표적인 예다. 국세청은 이미 상당수 실명전환자에 대해 자금출처 조사를 벌이고 있다. 5천만원이상 실명화자금 내용도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아놓고 있다. 성실하게 법을 지킨 사람의 소득 등 세무자료는 모두 국세청에 가 있는 데 눈치를 보며 실명화를 미뤄온 사람에 대해서는 앞으로 출처조사는 물론이고 거래내용도 불문에 부친다면 문제다.
중소기업 창업이나 벤처기업에 출자할 경우 일정액의 도강세(渡江稅)만 내면 그 돈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과거 세금은 제대로 냈는지 등을 일절 묻지 않기로 한 것도 성실한 납세자들에겐 불만일 것이다. 지하자금의 산업자금화를 위해 불가피하다 해도 검은 돈에 대한 면죄부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도강세와 과징금은 대다수 국민이 공감하는 수준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비실명자금의 실명화 과징금상한선 60%를 낮추는 문제도 과징금 도입 취지에 비추어 볼 때 대폭 인하는 곤란하다.
문제는 이같은 실명제 보완으로 지하자금이 과연 얼마나 제도금융권으로 유입될 것인지에 있다. 검은 돈은 노출을 꺼리고 세금내기를 싫어하는 속성을 갖고 있다. 그런 돈이 과징금과 도강세를 물고 중소기업 활용자금으로 얼굴을 내밀지, 40%의 높은 분리과세 혜택만으로 실명화할지, 그 실효도 의문이다.
정부는 실명제를 보완해야 하는 이유도 명백히 설명해야 한다. 그간 실명제 때문에 저축률이 낮아지고 과소비가 심해졌다며 실명제만 보완하면 경기가 회복될 것 이라는 막연한 주장이 정치권과 기업쪽에서 꾸준히 제기되었으나 객관적 자료의 뒷받침은 없었다. 지난 3년7개월간 국민들이 많은 불편과 대가를 치르며 정착시켜가고 있는 실명제를 고치는 데는 객관적인 근거와 명분이 뚜렷해야 한다.
돈세탁방지법 제정은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할 과제다. 현실에 제대로 기능하는 강력한 돈세탁방지법을 만들지 못하고 검은 돈에 각종 면죄부만 주는 결과가 되어서는 안된다. 실명제 보완에 따른 형평성 문제와 면죄부 악용소지 차단장치를 앞으로 공청회 등 공론화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