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황장엽씨 빨리 서울로 데려오라

동아일보 입력 1997-03-18 19:45수정 2009-09-27 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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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전비서 黃長燁(황장엽)씨가 자신이 원하는 서울로 곧바로 오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그의 망명의사가 받아들여져 일단 중국을 떠나 필리핀에 안착한 것은 다행이다. 지난달 12일 북경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망명을 요청한 지 34일 만의 일이다. 한때 북한의 납치주장과 방해공작이 없지 않은 가운데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마침내 그의 망명은 실현된 셈이다. 중국은 그동안 국제법과 관례에 따라 황씨망명 사건을 처리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국제관례란 정치적 망명의 경우 가급적 조속히 본인의 희망지로 보내는 것이다. 중국이 황씨를 제삼국으로 내보낸 것은 동맹국인 북한을 의식한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큰 나라로 어려운 입장에 놓였다해서 국제관례를 온전하게 지키지 않은 것은 역시 유감이다. 황씨는 필리핀에서 길게는 한달쯤 머문 뒤 서울로 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황씨의 망명희망지가 서울인 이상 필리핀에 그렇게 오래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 인도적 차원에서나, 건강을 위해서나 하루빨리 한국땅을 밟도록 해야 한다. 그를 위해 정부는 모든 외교적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는 황씨의 신변안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비록 필리핀에 북한공관이 없다 해도 북한은 과거 83년 아웅산 테러, 87년 대한항공기폭파 등 해외테러를 자행해온 전력이 있다. 미국이 아직도 북한을 테러국가 리스트에서 제외시키지 않고 있는 점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국가차원이 아닌 불순분자의 테러나 방해공작도 경계해야 한다. 신변안전을 위해서도 황씨의 서울도착은 빠를수록 좋다. 되돌아보면 중국정부는 그동안 황씨 망명사건을 국제관례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다짐해 왔다. 그럼에도 정부는 황씨를 한국에 바로 데려오는데 실패했다. 황씨 망명사실을 서둘러 발표하고 중국의 입장을 지나치게 염두에 둔 결과다. 83년 중국민항기 납치사건이나 85년 어뢰정 사건때 우리가 국제관례에 따라 신속 처리해 준 데 대한 보답도 얻어내지 못했다. 우리 외교력의 한계를 보여준 대목이다. 만일 우리 정부가 황씨의 망명을 성사시키는 조건으로 북한에 무슨 대가를 지불키로 했다면 그것도 크게 잘못된 일이다. 일부 외신은 정부가 중국을 통해 북한과 그를 위한 물밑거래를 했다고 전한다. 사실이라면 북한은 망명자를 돈받고 팔고 우리는 돈을 주고 사오는 셈이다. 앞으로 줄을 이을지도 모를 망명자 처리에 좋지 않은 선례가 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황씨가 원하는 최종망명지는 서울이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 황씨가 잠시 머물게 될 필리핀도 이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황씨는 안전하게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서울로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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