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69)

  • 입력 1997년 3월 14일 21시 34분


가을이 깊어지는 동안〈24〉 그러나 정문으로 나갔을 때 뜻밖의 여자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며 먼 곳에서 보았을 때에도 이미 그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여자가 날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것일까. 누구에게도 지은 죄 없이 궁금한 마음보다 우선 불안한 마음이 먼저 들었던 것도 이곳 기숙사에서 이루어지는 면회들의 깨끗하지 못한 뒷 일들 때문이었다. 여자는 정문 외등이 드리운 그림자 속에 서 있다가 그를 보고 그늘 아래로 나왔다. 그러나 그는 첫눈에 여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고개를 숙여 여자가 완전하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낯익은 얼굴이라면 희미하면 희미한 대로 어둠속에서도 상대를 알아보았을 것이다. 『절 찾아온 사람입니까?』 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여자에게 물었다. 『예』 『누구신지… 저는 잘…』 『저, 은명혜예요』 그러면서 여자는 불빛 아래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얼굴보다 「은」씨라는 희성이 먼저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 다음 아직 그의 기억 한 구석에 남아 있는 여자의 얼굴이 앞에 선 여자의 얼굴과 한 모습으로 겹쳐졌다. 바로 그 여자였다. 여자는 그때 그에게 자기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여자의 이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전에 그는 그 이름을 늘 졸병에게 오는 편지의 겉봉투에서 보았다. 그리고 어느날 죽은 졸병을 대신해 그가 여자를 만났고, 다시 여자가 그곳으로 죽은 애인을 찾아오지 않게끔 간절히 여자가 원하는 대로 여자의 가슴 속에 새겨진 한 남자의 기억을 훼손시켜 돌려보냈던 것이었다. 『어떻게 여긴…』 그는 간신히 거기까지 물었다. 『우연히 알게 되었어요. 얼마 전에…』 『그래서 일부러 나를 찾아온 겁니까?』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까지 찾아온 여자에게 일부러 그렇게까지 물어 그걸 확인할 일은 없는 것이었다. 『놀랐죠? 이렇게 찾아와서…』 대신 여자는 그렇게 말했다. 이번엔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답도 일부러 할 것까지 없는 일이었다. 대답이 아니더라도 이미 그는 충분히 놀라고 있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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