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런던〓김세원기자] 「엄마와 노래부르기, 종이오리기, 빵만들기, 꽃에 물주기…」.
싱가포르 브리티시 인터내셔널스쿨 유치부에 다니는 스티븐 원더본(4)은 요즘 유치원에서 돌아온 뒤 오후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저녁식사 전에 엄마와 함께 꼽아본다. 새해부터 시작한 평일 TV끄기 훈련 덕분에 스티븐은 오후시간을 TV시청 대신 알찬 프로그램으로 보내고 있다.
지난 설날 스티븐은 평일에는 TV를 보지 않고 주말에만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한시간동안 TV를 보기로 부모와 약속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티븐은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무섭게 거실 TV앞에 붙어앉아 저녁먹을 때까지 매달려 있기 일쑤였다.
『스티븐이 보는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만화영화라 내용에는 문제가 없지만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참는 훈련을 시켜야되겠다 싶어 평일 TV끄기 훈련을 시작했어요』스티븐의 엄마 尹貞淑(윤정숙·39)씨는 아이를 TV에서 떼어놓기가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TV만화영화를 좋아하는 것은 어느 나라 어린이를 막론하고 공통된 현상. 세상 일이 모두 제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선진국부모들은 TV끄기훈련을 통해 일깨워준다.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독일 보쿰에서 7년동안 살다 지난해 귀국한 이정수씨(37)는 2년전 아이를 데리고 이웃집을 방문했다가 무안을 당한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들 동희(6)가 무심코 거실TV를 켜자 그집 아이가 『난 한 번도 부모 허락없이 TV를 켠 일이 없는데 넌 왜 마음대로 TV를 켜느냐』고 따져 물었다. 동희는 그때서야 TV를 켤 때는 부모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영국 런던 근교의 투팅에 살면서 윔블던 던도널드초등학교까지 버스로 통학하는 알렉산더 브로드웨이(8)는 앉아서 간 적이 거의 없다. 되도록 어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서서 가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국의 초등학교들은 참을성과 양보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학생들에게 버스나 지하철에서 되도록 서서 가도록 가르친다.
일본 도쿄(東京)에 살고 있는 金恩淑(김은숙·32)씨는 지난해 12월 초등학교 2학년에 아이를 전학시키면서 며칠동안 긴 바지를 입혔다가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반바지를 입고 오는데 자기만 혼자 긴 바지 차림이라 창피하다는 이유였다. 긴 바지는 감기에 걸렸거나 아플 때만 입는다는 것이다.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에도 콧물을 흘리면서 반바지 차림으로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니 처음에는 놀랍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심지어 체육시간에는 반바지에 반팔차림이구요. 추위에 대한 저항력과 인내심을 키워주기 위해 일부러 겨울에도 반바지를 입힌다는 얘기를 듣고는 고개가 끄덕여지더군요』
김씨는 전에 아이가 찬 바람만 불어도 감기에 걸렸는데 반바지를 입고 다니면서 몸이 튼튼해졌다고 좋아한다.
「사서 고생」을 시켜가면서까지 인내심을 길러주기에 열심인 선진국 부모들은 선물을 사줄 때도 매정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하다.
94년 미국 시카고 블루밍턴시 인디애나주립대 부속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남매를 보낸 陸相希(육상희·38·웅진출판사 해외개발부장)씨는 『미국 부모들은 아이들이 아무리 떼를 써도 사달라는 대로 사주지 않는다』며 『심부름을 한다든가 자기 방을 청소하든가 반드시 대가를 먼저 치르게 한 뒤 원하는 것을 사 준다』고 말한다.
영국에서는 인내심을 발휘해 동화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양보하는 등 착한 일을 한 경우 스티커를 공책에 붙여주고 학기말에 스티커 수에 맞춰 예쁜 학용품을 상으로 준다.
뛰어난 능력보다는 인내심이나 자제력을 발휘하는 쪽이 상받을 기회가 더 많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