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는 동안〈9〉
『그게 지금 우리 기분과 꼭 상관 있는 일인가요?』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은 없는 거지. 그렇지만 이런 것은 있어』
『어떤 거요?』
『어느 학과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마 나하고 같은 학년일 거야. 입학해 처음 기숙사에 들어왔을 때 들은 얘기가 바로 그 얘기였으니까. 기숙사 얘기와 그의 아들 얘기를 말이지. 그 기숙사가 어떤 목적으로 지어졌는지를 알게 되고, 그렇게 지어진 기숙사에 감지덕지 들어와 있는 우리의 처지와 그의 처지는 비교하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비교가 되는 거지. 그 얘기를 듣던 날 잠자리에 누울 때 꼭 그런 기분이었어. 마치 똥을 깔고 그 위에 이불을 덮고 누운 듯한 느낌 같은 거 말이야. 그래서 그와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걸 알고 있었고, 입대 전에도 그가 누구라는 걸 몇 번 먼 발치에서 본 적은 있었어』
『그럼 그 사람 전에도 그런 차를 타고 다녔나요?』
『그건 잘 모르겠어. 아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군대에도 비슷한 때에 입대했을거야. 그러니까 복학해서 다시 볼 수 있는 거고. 그에 대해 사실 내가 어떤 반감을 가질 이유는 없어. 어떤 목적으로 세워진 기숙사든 지금도 도움을 받고 있는 쪽은 그쪽이 아닌 이쪽이 분명한 거니까. 그렇지만 그 사람과의 조우가 아까 그런 모습인 것은 싫었어』
어깨 하나쯤 사이를 두고 앉았는데도 그녀에겐 그의 가슴에서 전해지는 어떤 쓸쓸함 같은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그래, 그것은 틀림없이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것이다. 그의 말대로 어떤 식으로든 그 사람의 아버지거나 그 기업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의 발밑의 낙엽도 지기 전에 떨어져 말라버린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때면 왠지 그의 쓸쓸한 모습에 어떤 짙은 연민 같은 것이 가슴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몰랐어요, 나는…』
정말 먼저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그녀는 자기가 먼저 그를 가만히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끌어안고 가만히 그의 얼굴에 자신의 뺨을 오래도록 대주고 싶었다. 자신이 어떻게 하는 것이 이 남자의 쓸쓸함을 덜어줄 수 있는지 알 수만 있다면….
『아니, 아닌 것처럼 하고 살았어도 내가 그런 부분에 대해 알게 모르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부분도 적지 않을 거야. 그래서 더 쓸쓸해지는 거야』
『그래도 아까 쓸쓸했던 건 우리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녀는 우리라고 말했다.
<글:이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