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축제/伊 베니스카니발]원색의 「가면물결」

  • 입력 1997년 2월 21일 21시 11분


[베니스〓오명철기자] 수상도시 베니스에서는 해마다 사순절(四旬節·부활절 전의 40일)에 앞서 2주가량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가면축제가 열린다. 지난 11일까지 열린 올 베니스 카니발에는 유럽 각국과 일본등 지에서 5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인구 8만명인 베니스의 좁은 골목길은 고깔모자와 가면을 쓴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로 넘실댔고 주말이면 육지와 베니스를 잇는 「자유의 다리」에는 관광객들을 실은 수백대의 대형버스가 줄을 이었다. ▼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 기독교 문명에 토대를 둔 서양의 대부분 국가들이 같은 시기에 카니발을 열고 있지만 베니스 카니발이 유독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등 유럽의 인본주의 문화가 가장 발달했던 14∼17세기의 역사적 전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미의 카니발이 뜨거우면서 관능적인 반면 베니스의 카니발은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카니발이 막바지에 달한 9일과 10일 베니스 심장부인 산마르코광장 주위에는 10만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발디딜 틈도 없이 붐볐다. 화려한 원색의상과 갖가지 기묘한 모습의 가면을 쓴 사람들은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카니발을 즐겼고 수백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관광객들의 얼굴에 화려하고 세련된 문양을 그려놓으면서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참가자중에는 관광객이 아닌 직업화가 사진작가 전문 메이크업 아티스트들도 상당히 많았다. 전통적으로 베니스 사람들은 총독내외나 귀족의 화려한 복장 또는 해 달 꽃 등 자연을 나타내는 의상을 입는 것이 특색. 어릿광대 분장도 인기가 있으며 어린이들은 개 고양이 토끼 등 동물 분장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올해는 롱부츠와 얼룩말 무늬 코트에 대형모자를 쓴 커플과 디즈니사의 최신영화에 나오는 달마시안개를 본뜬 유니폼을 차려입은 고교생 17명 등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복장이 시선을 모았다. 또 태국공주와 중국처녀 및 일본여성을 본뜬 동양풍 참가자들도 등장, 인기를 끌었다. ▼ 伊문화 우수성 전파 ▼ 빼어난 미모로 남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태국공주 차림의 독일 여대생 레티지아 모네카양(20)은 『10여년동안 가족들과 함께 한해도 거르지 않고 베니스 카니발에 참석해 왔다』고 소개하고 『어머니께서 4주간에 걸쳐 의상을 준비해 주셨다』고 말했다. 중국처녀 복장의 에리카양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에서 남동생 및 친구와 함께 고속버스편으로 도착했다』면서 『유럽 각지에 수많은 카니발이 있지만 이 축제를 통해 이탈리아 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확인하면서 긍지를 느낀다』고 자랑했다. 웬만한 복장이나 분장으로는 눈길을 끌 수 없는 것이 베니스 카니발의 특징. 참가자들은 따라서 해마다 갖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동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애쓴다. 올해의 경우 대리석기둥과 그림 하프 모양으로 된 모자를 쓴 3인조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천마(天馬)모양의 대형모자를 쓴 커플, CD와 LD를 갑옷과 투구처럼 장식한 무사복장이 눈길을 끌었다. 또 스파게티와 파스타로 온 몸을 장식한 여성과 부서진 변기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청년 등 「파격적인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고대 로마의 제사의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베니스 카니발이 오늘날과 같은 형태를 갖춘 것은 베니스의 부와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16세기경. 당시 귀족들은 축제기간만은 모든 시민들이 신분이나 재산정도에 상관없이 원하는 의상과 분장으로 카니발에 참석할 수 있도록 용인했으며 평민들이 귀족들에게 막말을 하는 것도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카니발을 통해 억눌리고 가난한 자들의 불만을 해소해주고 계층간의 갈등을 완화시킴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도모했던 것이다. ▼ 계층갈등 완화 한몫 ▼ 베니스 카니발은 여타의 다른 축제와는 달리 연출이나 작위적 진행이 철저히 배제됨으로써 모든 참석자들이 관람객이자 주역으로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한번 이 카니발에 참가한 사람들은 그 특유의 매력과 역사적 숨결, 그리고 독창성을 잊지 못해 해마다 또다시 베니스를 찾아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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