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는 동안〈1〉
때로는 그녀가, 혹은 그가 먼저 수업이 끝나면 교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나무 그늘이거나 벤치에 앉아 상대를 기다리기도 했다. 나뭇잎들은 아직 넓고 푸르게 하늘을 가렸다.
아주 가끔은 그녀의 수업이 주로 있는 인문관 건물 앞에서 서로 마주치기도 해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의 오토바이 뒤에 타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도 내일은 어디서 만나죠, 하는 약속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만나면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빠져나와 신촌의 카페로 가거나 때로는 멀리 서오릉까지 나가기도 했다.
어쩌면 그건 데이트라기보다는 만나는 일 자체에 대한 열중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캠퍼스 안에서 다음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지 않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기본적으로 들일 수 있는 노력과 관심이란 미리 정한 약속 없이도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장소에 먼저 나가 상대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때로는 학교에 오토바이를 세워둔 채 끝없이 미끄러지고 헤엄치듯 다리가 아플 때까지 거리를 걷다가 다시 걸어서 오토바이를 세워둔 학교까지 되돌아오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독립군은 늘 왼편에 서기를 좋아했다. 어쩌다 한참 길을 걷다보면 오히려 그의 왼편에 그녀가 와 서 있을 때도 있었는데, 그러면 그는 어, 어쩌다 이렇게 자리가 바뀌었지, 하고 얼른 자기가 그녀의 왼편에 와 서 있었다. 큰 길에서라면 자동차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카페에서 나란히 앉아 있을 때라든가 자동차가 없는 숲길을 걸을 때에도 그랬다.
그래서 그녀는 늘 그의 오른쪽 얼굴을 보거나 오른쪽 어깨, 오른쪽 목덜미를 바라볼 때가 많았다.
『왜 걷기만 하죠?』
학교 앞에서 멀리 종로에 있는 한 서점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녀가 물었다.
『왜? 걷는 게 싫어?』
이제 독립군도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놓았다. 독립군이 일방적으로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먼저 이제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요』
『걸으면 우리가 가장 자연스럽게 서로 익숙해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함께 있는 동안에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할 시간이 많을 테고』
『앉아서 이야길 하면서는 불가능한가요?』
『아니. 그렇지는 않아. 그렇지만 걷는 게 좋으니까. 일찍이 내게 여자와 함께 걷는 게 좋다고 말해준 사람도 있고』
<글:이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