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옥의 세상읽기]열차여행으로 「여유」되찾아

  • 입력 1997년 2월 14일 20시 10분


10여년 만에 기차를 탔다. 아이들 겨울 방학은 끝나가는데, 늘 바쁘다는 이유로 눈썰매장 한번 가지 못한 터라 1박2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큰 맘을 먹었다. 행선지는 천안. 자동차로 가도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가까운 곳이지만 아이들은 「기차」를 고집하며 꼭 타보고 싶어했다. 『엄마, 저는 기차 타보는 게 소원이에요』 『뭐, 소원씩이나』 『네, 이때까지 한번도 못 타봤잖아요. 차타고 가는 건 정말 싫어요. 꼭 기차 타는 거죠』 두 아이들은 행여 엄마 마음이 변할까봐 기차표를 예약할 때까지 기차 타보는 소원을 빌었다. 드디어 서울역, 지나다니면서 늘 보긴했지만 직접 가보니 많이 변해 있었다. 대형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와 있고 사람들은 기차 시간을 기다리면서 햄버거를 먹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와, 그러니까 서울에도 기차가 있네. 난 자동차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서울역 되게 크다』 아이들은 여행을 간다는 설렘에다 기차역에 왔다는 감격까지 겹쳐서 어쩔 줄을 몰랐는데 그 기분은 새마을호에 올라타는 순간 절정을 이뤘다. 의자를 돌려서 엄마와 마주 보며 갈 수 있고 자리에 있는 이어폰으로 음악 감상까지 해 가면서 끝없이 이어진 기찻길에 마음을 싣고 있었다. 『엄마, 눈 와요』 『그러네, 제법 온다. 얘, 기차 타길 정말 잘했어. 이러다가 쌓이면 길 미끄러워서 어쩔뻔했니. 역시 기차는 안전하다니까』 자동차 운전을 했으면 조마조마했을 마음도 느긋하게 접어두고 차창 밖으로 날리는 함박눈을 보았다. 천안역에 내려서 친구와 친구 동생 내외를 만나기 위해 택시를 탔다. 굳이 우수리를 받지않던 충청도 택시 기사 아저씨의 구수한 인심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몸의 때는 마음의 때, 몸 씻고 마음 씻자」. 새로 생겼다는 온천에 가서, 어느 시골 목욕탕 주인장이 탕안에 써 붙였다던 글귀를 떠 올리며 꿈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래, 얘들아 미안하다. 내가 그동안 너무 앞만보고 달려왔구나. 너무 빠른 것에 길들여져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했구나. 다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난 비로소 내 자신을 오랜만에 돌아볼 수 있었다. 그때 기차가 예정보다 15분 연착된다는 방송이 들렸다. 『그까짓거 조금 늦으면 어때, 느리게 살면 되지』 혼자 중얼거리며 꼭 잡은 아이들의 손은 유난히 따뜻했다. 차명옥<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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