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여자의 사랑(39)

  • 입력 1997년 2월 11일 20시 17분


독립군 김운하〈10〉

카페에서 그는 생활하고 있는 기숙사에 대해서 말했다.

어디에서 사느냐고 물었을 때 독립군은 분명 기숙사라고 말했다. 처음엔 그녀도 우리 학교에 기숙사가 있었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처음 듣는데요. 학교에 기숙사가 있다는 얘기는』

『학교 기숙사가 아니라 서울에 올라와 있는 고향 학생들을 위해 지은 군민회 기숙산데, 아마 서울서 몇 째 안 가게 비싼 땅에 서울서 몇 째 안 가게 허름하게 지은 건물일 겁니다. 기숙사 사람들 모두 그렇게 말할 정도니까』

바다를 끼고 있는 지역이라 「청파의숙」이라는 이름으로 그곳 출신의 한 기업인이 투기 목적으로 사들인 땅의 세금을 피하기 위해 대충 건물을 지어 운영만 군민회에 맡긴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땅과 건물은 여전히 그 기업인 것이고, 그밖에 비품이나 시설 같은 건 그 기업인도 일정 부분 기본적으로 부담했겠지만 그

지역 출신 여당 국회의원도 여기저기 돈을 뜯어 얼마간 보탰을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들이 볼 땐 기숙사 학생 한 명당 몇 표, 하고 그런 계산이 딱 나오니까요. 그래서 선거 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거죠. 평생 가도 경비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야유회 한 번 안 가는 기숙사에 선거 때가 되면 선거 전 날 날렵한 고속버스 한 대가 기숙사 마당에 대기하고 있는 겁니다』

『서울서 선거 안 하나요?』

『지방학생들을 잘 모르는군요. 서울로 유학왔다고 주민등록 옮겨놨다간 졸업할 때까지 하숙집 옮겨 다닐 때마다 그걸 옮기자면 아마 열 번은 더 전출입 신고를 해야 할 겁니다』

『그럼 단체로 그 버스를 타고 가서 선거를 하는 건가요?』

『안 가면 당장 눈밖에 나니까. 다음해 기숙사 입실에도 문제가 생기고. 그런데 그렇게 내려간 학생들 가운데 열의 아홉은 다른 사람을 찍고 온다는 거지요. 지난번 선거에서 그 사람이 서른 표 정도 차이로 떨어졌는데, 아마 서울 군민회 학생 기숙사에 버스만 대지 않았어도 다시 당선됐을 거라는 거죠』

『청산리 독립군도 그랬나요?』

『그 중의 하나죠』

『이제보니 배은망덕하군요』

『얘기가 그렇게 되는 겁니까?』

그녀는 시설은 어떻느냐고 물어보았다.

『군대 내무반보다는 조금 나을 겁니다. 그래도 이인 일실 원칙은 지키니까』

『그래도 기숙사 생활은 재미 있지 않나요?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같이 모여 있으니까 심심하지도 않을테고』

『그게 재미 있으면 아마 세상에 재미 없는 일이란 없을 겁니다』

<글: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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