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白湖전집」펴낸 임형택 교수

  • 입력 1997년 2월 5일 20시 13분


[金次洙 기자] 『白湖 林悌(백호 임제·1549∼87)는 중세의 어둠속에서 방황하면서도 천재적 기질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거목입니다. 낭만성과 현실성을 두루 겸비한 백호의 문학정신은 오늘을 사는 지식인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줍니다』 백호의 현존작품을 모두 모아 「백호전집」(전2권·창작과비평사 펴냄)으로 완역한 성균관대 임형택교수(한문학)는 백호의 호방한 삶과 문학세계를 현대어로 온전히 되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백호의 13대 손이기도 한 임교수는 『백호의 작품은 대개 난해한 한문으로 돼있어 현대인들이 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는데 이번에 완역됨으로써 민족문화의 소중한 자산으로 살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백호전집은 사제가 함께 대를 이어 번역한 역작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雨田 辛鎬烈(우전 신호열)선생이 20년전 번역을 시작했으나 미처 끝내지 못하고 93년 타계하자 우전 문하에서 한학을 익힌 임교수가 이를 마무리한 것이다. 『백호는 인류역사의 모순과 사회의 질곡을 통감하고 이를 문학으로 표출했습니다. 현실에 대한 갈등도 많았지만 낭만적인 시나 산문을 통해 자유분방함을 형상화 했지요』 임교수는 백호의 호방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으로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나니/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 하노라』라는 시조를 꼽았다. 백호는 평안도 도사(都事)가 되어 송도를 지날때 황진이의 무덤앞에서 이 시조를 짓고 제를 지냈다가 탄핵을 받기도 했다. 『백호는 20세가 될 때까지는 스승을 모시고 공부를 하지 못했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성격이었습니다. 천재요 기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지요. 그러나 그의 문학작품들이 단순히 천재적 재주에 따른 것이 아니라 엄청난 독서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또한 기존의 사고틀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면서도 민족의 처지와 자기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던 것도 본받아야 할 대목입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백호가 속리산에 들어가 3년동안 「중용」을 8백번이나 읽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는 것. 백호는 또 39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면서 『사해의 여러나라에서 황제를 칭하지 않은 나라가 없는데 유독 우리나라는 예부터 해보지 못했다. 이런 누추한 나라에서 살다가 가는 데 죽음을 애석해 할 것 없다』면서 곡을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투철한 민족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게 임교수의 설명이다. 임교수는 이번에 백호전집을 번역하면서 필사본 등으로 전해오던 백호의 작품을 일일이 찾아내 오자를 바로잡고 주석을 많이 달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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