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수필]버스전용차로 위반않는 양심 필요하다

  • 입력 1997년 2월 4일 20시 34분


교통체증을 빚을 설 귀성을 앞두고 새해 연휴의 일을 떠올려 본다. 부산의 처가에 급한 일이 생겨 작년 12월31일 처와 두살난 딸을 데리고 분당의 집을 나섰다. 대중교통편을 구할 수 없어 자가용을 이용해 판교인터체인지로 진입, 경부고속도로에 올라선 때는 오후 5시반. 눈이 얼어 붙은 도로사정으로 장거리운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용차들은 서행과 정체를 반복하며 거북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반면 시원스레 뚫린 버스전용차로에는 승객을 가득 태운 대형버스들이 싱싱 소리를 내며 질주했다. 일반차로의 운전자들이 준법정신과 흔들리는 양심 사이에서 갈등을 느낄 법도 했다. 한동안 대부분의 승용차들은 자기 차로를 지켰다. 그러나 어둠이 짙어지자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정체를 못견딘 성급한 승용차 서너대가 잽싸게 버스전용차로에 진입하더니 날쌔게 질주했다. 기다렸다는 듯 다른 승용차들도 앞다퉈 끼어들어 고속도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전용차로로 끼어들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의 무법과 무질서였다. 멈춰선 차 속에서 화가 치밀어올랐다. 밤이 깊어가자 줄지어선 「양심의 동반자들」을 더욱 무시하는 광경이 벌어졌다. 운전자 혼자만 탄 승합차가 버스전용차로로 당당하게 들어섰다. 그러자 승합화물차는 물론이고 비슷한 크기의 지프형 승용차까지 줄을 이었다. 버스전용차로의 의미가 사라지는 현장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면서 거북걸음을 하는 나의 준법정신이 초라하게 생각되기도 했다. 자정이 넘자 혼란은 극에 달했다. 짐을 가득 실은 화물차에다 컨테이너 트럭까지 가세했다. 버스들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겠다는 듯 위협적으로 상향등을 켜고 경음기를 울려댔다. 질서의식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규정을 지키면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전용차로 진입을 자제하는 일반차로의 운전자들이 눈물나도록 고마웠다. 「나 하나쯤」이라는 이기주의가 춤추는 가운데서도 일반차로를 지키는 그들이 큰 위안이 됐다. 그사이 차로위반을 단속하는 경찰은 한번도 보지못했다. 7시간만에 대전을 지날 때쯤 고속도로 상황을 알리는 대형전광판에는 안내문이 어둠 속에서 깜박이고 있었다. 「전용차로 위반차량 24시간 단속중」. 김태수(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294의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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