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66)

  • 입력 1997년 1월 9일 20시 49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56〉 다리를 저는 아름다운 젊은이는 자신의 신세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나는 기쁨에 찬 마음으로 노파가 전하는 말을 듣고 있었고 노파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처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눈치챈 나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계속했답니다. 지난번에 찾아왔을 때 아씨와 저 사이에 있었던 일을 그분께 전했더니 그분은 너무나 절망한 나머지 쓰러져 눕게 되었는데 이젠 피골이 상접하여 거의 가망이 없을 지경이랍니다. 더없이 아름답고 훌륭한 젊은이인데 말입니다, 하고 말이에요. 그제서야 처녀는 입을 열어, 그 젊은 분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게 모두 나 때문인가요, 하고 물었습니다. 나는 단호히 대답했지요. 알라께 맹세코, 그렇고 말고요. 아씨를 사모한 나머지 그 아름답고 착한 젊은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죠, 하고요. 아주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처녀는 말했답니다. 돌아가시거든 그분께 잘 말씀해 주세요. 사실은 나도 그날 돌걸상에 혼자 앉아 있는 그 분을 보았는데, 나야말로 그 분의 곱절이나 그 분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그리고 금요일에 사원에서 기도가 있기 전에 우리집으로 찾아오시도록 말해 주세요. 내가 내려가서 문을 열어드릴 테니까요. 그리고 내 방으로 모시고 와서 잠깐 뵙고나서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헤어지기로 하겠어요, 하고 말이에요. 이렇게 말하는 그 처녀가 얼마나 착하고 아름다워 보였던지 흡사 천사같았답니다. 나는 그 처녀의 손에 입맞추고는 달려왔답니다」 노파의 이 말을 듣자 나는 너무나 기뻐 하늘이 열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까지 나를 짓누르던 내 가슴의 괴로움과 내 병은 씻은 듯이 나았고, 가슴 속에는 알 수 없는 충일감으로 넘실거렸습니다. 집안 사람들과 친구들은 모두 내가 병이 완쾌된 것을 기뻐해 주었습니다. 이윽고 기다리던 금요일이 다가왔습니다. 나는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고 사람들이 기도드리러 갈 때를 기다려 처녀에게로 찾아갈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노파가 말했습니다. 「도련님, 아직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 목욕을 하시고 머리를 깎으시는 게 좋겠어요. 앓고 난 흔적을 없애기 위해서 말이에요」 듣고보니 그럴듯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그게 좋겠어요. 목욕은 방금 했으니까 머리만 깎도록 합시다」 이렇게 말한 나는 시동을 불러 분부했습니다. 「시장에 가서 이발사를 불러 오너라. 아주 신중한 자로 말이다. 쓸데없는 말을 지껄여대거나, 미주알고주알 캐묻기 좋아하는 자나, 아는 척하고 시끄럽게 수다를 떨어 골치아프게 하는 자는 딱 질색이야」 내 분부를 받은 시동은 시장으로 달려가 이발사 하나를 데리고 왔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지금 여러분들이 보고 계시는 바로 저 밉살스런 영감, 재수 없는 늙은이였답니다. 저 늙은 것을 데리고 온 것은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제 운명의 재앙이었습니다』 <글: 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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