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의 창]아르헨,감원바람에 근로자들 『자라목』

입력 1997-01-06 20:13수정 2009-09-2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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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반전 아르헨티나에 처음 부임했을 때만 해도 좁은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길을 막고 가게 유리창을 기웃기웃 들여다보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생각했으나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오랜 세월 시장을 폐쇄해서 공산품이 귀하고 높은 인플레 때문에 보다 싼 생필품 정보를 얻기 위해 진열장 너머로 가격표를 살피는 것이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왕이고 소비자는 그나마 물건을 공급해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공급자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터득한 작은 생활의 지혜였다. 그러나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면서 이제는 사정이 완연히 달라졌다. 중국산을 선두로 값싸고 질좋은 외국제품이 물밀듯 들어오면서 소비자들은 널려 있는 제품 중 어느 것을 살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기 시작했고 가게는 물건을 팔기 위해 손님을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근로자들의 발걸음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3,4년 전만 해도 한번 취직은 평생직장을 약속했지만 이제는 국내기업이 외국기업과의 경쟁력 강화를 서두르면서 많은 근로자들이 거리로 내쫓기고 있는 실정이다. 3시간씩 소비하던 점심시간을 줄이고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등 해고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가 돼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사무실이 밀집한 도심의 식당가에서도 확연히 나타난다. 70∼80년 역사를 자랑하며 백발이 성성한 초로의 노인들이 서비스하던 전통 음식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맥도널드를 필두로 20분내에 한끼를 해결할 수 있는 패스트 푸드점이나 핫도그 판매대가 성업중이다. 세계적 공연이 연일 계속되는 「남미의 파리」로서의 높은 자존심이 개방의 문턱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졌다. 자본주의 열강 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조그만 나라들과도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아르헨티나는 오늘도 힘겨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양 국 보<부에노스아이레스 무역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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