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전문가 의견 무시풍조

  • 입력 1996년 12월 30일 20시 20분


우리 나라에서 아름다운 자연하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설악산과 동해 바다의 틈바구니에 속초가 있다. 그 속초의 자랑 청초호가 중병을 앓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속초가 점차 대형 도시로 커감에 따라 청초천의 오염 정도가 높아지면서 그로 인해 청초호의 오염도 심각해지고 있던 차에 호수 주변에 온갖 위락 시설은 물론 호수 자체를 깔아뭉개는 일을 건설부가 허가해준 것이다. 시름시름 앓던 이에게 아주 극약을 먹여버린 격이다. 금년 초 환경부가 야생동물 이동통로 설치에 관해 자문을 해달라고 하여 당시 환경부 장관과 함께 강원도 산악 지역을 찾은 일이 있다. 그 무렵 청초호 개발을 반대하고 있던 환경부 장관을 설득하려는 속초시 관계자들의 간청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청초호를 찾았다. 생태학을 연구하는 전문가로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장관의 질문에 난 그저 철새들의 작은 쉼터 바로 그 턱 밑에 까지 호텔 콘도 야외극장 보트장 등을 세우면서 어떻게 철새들을 보호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얘기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래도 자꾸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내놓으라 하여 그들이 준비한 청사진에 금을 그으며 물가로는 절대 어떤 위락 시설도 만들지 말고 대신 녹지대를 형성하여 새와 사람들을 최소한 분리시켜줄 것을 제안했다. 이에 장관은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 올리면 재고하겠노라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후 나는 청초호 문제에 대해 이렇다할 정보를 얻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고 언젠가부터는 청초호가 활발히 개발되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번번이 개발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강원도 환경 보존 정책이 나를 아프게 함은 물론 전문가의 의견이 늘 무참하게 묵살되는 풍조 또한 아쉽다. 최재천(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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