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45)

  • 입력 1996년 12월 17일 20시 00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35〉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없는 젊은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시녀들까지 나서서 저를 용서해줄 것을 애원했지만 신부의 분노는 가라앉을 줄 몰랐습니다. 「아니야. 그냥 둘 수는 없어. 손을 자르는 것이 너무 심하다면 그 죄를 지은 손가락만이라도 자르지 않을 수 없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나가버렸습니다. 그후 열흘 동안 저는 그녀를 볼 수 없었습니다. 노예 소녀 하나가 저에게 음식물을 날라다주는 것이 고작이었는데, 그녀에게 듣자니 신부는 카민 시추 냄새로 해서 병이 났다는 것입니다. 열흘이 지나자 신부는 저에게로 와서 말했습니다. 「오, 이 미련한 사람! 손을 씻지 않고 카민 시추를 먹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이제 가르쳐 드리지요」 그리고 큰 소리로 부르짖자 우르르 시녀들이 달려와 저를 뒷결박지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신부는 날카로운 칼을 집어들더니 제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을 잘라버렸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보고 계시는 바와 같이 이렇게 말입니다.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잘리는 순간 저는 기절해버리고 말았습니다만 신부는 제 상처에다 약초 가루를 뿌려주었습니다. 한참 뒤에서야 저는 정신을 차리고 말했습니다. 「앞으로 카민 시추를 먹을 때엔 반드시 잿물에 마흔 번, 비누로 마흔 번, 그리고 다시 맑은 물에 마흔 번을 씻겠어요. 먹고 난 후에도 물론이고요」 제가 이렇게 말하자 여자는 저에게 맹세를 시켰습니다. 그때 이후로 카민 시추를 먹은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지금까지 들려드린 것이 제가 엄지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을 잃게 된 내력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가 카민 시추를 먹을 때는 도합 이백사십 번에 걸쳐 손을 씻게 된 내력입니다』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없는 젊은이는 여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동은 물었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내는 대답했습니다. 『제가 맹세를 했을 때서야 여자는 노여움을 풀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날 밤 우리는 함께 잤습니다. 그것이 그녀와 제가 함께 한 초야였습니다』 그때 좌중에서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카민 시추 냄새가 난다고 남편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잘라버릴 만큼 까다롭고 표독스런 여자와 당신은 대체 어떻게 함께 잘 수가 있었소?』 『그러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요. 그녀와 저는 법적으로 이미 부부 사이였으니까요. 게다가 그녀는 카민 시추 냄새에 과민한 반응을 나타낸다는 점을 제외하면 다른 것은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여자였으니까요. 그녀 입장에서 보아도 그녀는 카민 시추 냄새를 싫어했던 것이지 저를 싫어한 것은 아니니까요』 듣고 있던 청중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렸습니다. 그러자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이 없는 사내가 덧붙여 말했습니다. 『부부 사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닐까요?』 <글: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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