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慶鎬(김경호)씨 일가족 등 17명이 김포공항에 안착, 사선(死線)을 넘는 북한탈출 대드라마를 끝낸 뒤 서울시내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70년대초의 일이 떠올랐다. 남북회담을 하러 서울에 온 북한대표들이 『남조선의 자동차를 모두 서울로 모은 것 아니냐』고 엉뚱한 트집을 잡았다. 남한대표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맞다. 그런데 전국의 빌딩들을 서울로 옮기느라 더욱 힘이 들었다』
▼당시의 북한대표들과 망명한 김씨 일가족의 입장은 전혀 다르지만 「미지(未知)의 세계」인 서울을 대하는 놀라움은 별 차이가 없었을 것 같다. 숙소로 향하는 미니버스 창가로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을 보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형형색색의 자동차 대열과 즐비한 현대식 빌딩, 화려한 밤거리를 활보하는 시민들을 보고 자유를 찾았다는 확신이 들었을 것이다. 김포공항에 막 도착했을 때만 해도 긴장감이 역력했던 그들이다
▼44일간에 걸친 김씨 일가족의 탈출 드라마는 오스트리아 퇴역대령의 가족 9명이 나치 치하(治下)를 아슬아슬하게 탈출, 알프스를 넘어 자유를 찾는 내용의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못지않은 감동을 준다. 중풍에 걸린 남편과 임신 7개월의 딸, 어린이 5명까지 한명도 낙오없게 탈출을 지휘한 崔賢實(최현실)씨의 여장부 기질은 눈물겹도록 돋보인다. 북한요원들에게 붙잡힐 경우에 대비, 극약을 갖고 있었다는 대목에선 비장(悲壯)함을 안겨준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과제는 이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일이다. 정착을 돕기위해 관계당국이 여러가지 신경을 쓰겠지만 이 사회에서의 적응과 행복은 결국 자신들의 노력에 달려 있다. 그동안의 귀순동포중에는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도 더러 있다고 한다. 탈출을 시작할 때의 각오라면 자유경쟁사회를 헤쳐나가지 못할 것도 없다. 「보호」를 벗어나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때 자유는 더욱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