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하일지판 아라비안 나이트(238)

  • 입력 1996년 12월 9일 20시 24분


제6화 항간의 이야기들〈28〉 엄지 손가락과 엄지 발가락이 없는 젊은이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다시 일주일이 지난 마지막 날 드디어 여자는 당나귀를 타고 내시와 노예 두 사람을 거느리고 나타났습니다. 저는 너무나 반가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습니다. 여자는 저에게로 와 인사를 하고는 말했습니다. 「지난번의 물건 값이 늦어졌군요. 이제 갚아드릴 테니 환전꾼을 데려오세요」 그동안 저는 그녀가 지운 외상 값 때문에 상인들의 독촉에 적지 않이 시달렸으면서도 짐짓 말했습니다. 「저로서는 당신을 다시 뵙게 된 것만으로도 기쁘답니다. 돈 따위는 문제도 아니랍니다」 이렇게 말하고 저는 환전꾼을 불러왔습니다. 그녀가 데리고 온 내시는 돈을 꺼내 환전꾼에게 셈하게 하였고, 셈을 마친 환전꾼은 그것을 저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이 일이 끝나자 여자와 나는 마주 앉았습니다. 저는 지칠 줄 모르고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연분홍 베일의 고운 님께 말하노니, 이 가슴의 상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오, 죽음마저도 차라리 즐거우련만. 그대는 아는가, 이몸은 한 마리 병든 짐승 같다는 것을. 저의 노래를 들은 여자는 방긋 한번 미소를 지을 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더없이 우울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었고, 그녀는 저를 약간 외면한 채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시장이 열리고 가게들은 하나 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자 여자는 저에게 이러저러한 물건을 갖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이 가게 저 가게를 돌아다니며 그녀가 주문한 물건들을 갖추어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물건을 받자 여자는 대금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한번 사라진 여자는 한 주일이 지나도, 다시 한 주일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제가 한 짓을 후회했습니다. 그녀에게 사 준 물건 값은 자그마치 일천 디나르나 되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단지 오천 디르함의 물건 값을 가지고 와서 일천 디나르 어치의 물건을 가지고 가다니! 그녀가 지우고 간 외상값을 다 갚아주게 되면 나는 한 푼 없는 거지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거야. 그 예쁜 여자는 순전한 사기꾼으로, 미모를 미끼삼아 나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이 틀림없어. 나를 젖내나는 애숭이로 본 거야. 지금쯤 그녀는 내가 주소도 묻지 않았다고 하면서 비웃을 거야」 한달이 지나도 여자가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저는 의심과 공포에 사로잡혀 애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글:하 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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