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장하다,이봉주

  • 입력 1996년 12월 2일 19시 59분


▼마라톤 세계 최고기록 보유자인 에티오피아의 딘사모는 눈에 띄지 않았다. 지난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초차의 뼈아픈 패배를 안겨줬던 남아공의 투과니는 이미 28㎞지점에서 절뚝거리며 달리기를 포기했다. 런던마라톤을 3연패한 멕시코의 세론, 지난해 후쿠오카(福岡)대회를 제패한 브라질의 산토스도 뒤로 처졌다. 최종결승선에 닿을 때까지 끈질기게 선두를 위협하던 스페인 복병 후스다도도 「마의 2초벽」앞에 무릎을 꿇었다 ▼李鳳柱(이봉주)선수가 이들 세계의 철각들을 완전히 제압하고 세계 마라톤의 제왕으로 등극하던 지난 1일, 후쿠오카는 새벽부터 불어닥친 눈보라와 강풍으로 체감온도가 0도 이하로 떨어지는 최악의 날씨였다. 이봉주는 이 악천후를 불굴의 투지로 달려 어두운 2인자의 터널을 깨끗이 빠져나왔다. 감격스런 영웅의 탄생이자 자랑스런 한국인의 탄생이었다 ▼이봉주는 지난 7년동안 약 8만㎞를 달렸다. 하루 30여㎞씩을 달린 초인적인 훈련이었다. 짝눈에 짝발, 작은 키에 엉성한 치열(齒列)의 육체적 핸디캡과 마라톤의 필수요건인 스피드와 가속도거리에서 黃永祚(황영조)에게 뒤지는 단점을 피나는 훈련으로 극복했다. 이봉주의 영광은 바로 이 연습벌레의 자기극복의 승리이자 냉소주의와 자학에 빠진 오늘의 한국인에게 새로운 자신감과 자긍심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고 소중하다 ▼이봉주는 우승의 월계관을 쓴 뒤 『내발로 세계기록을 깨고 싶다. 시드니올림픽을 제패할 때까지 계속 뛰겠다』고 다짐했다. 아쉬운 것은 그의 고독한 질주를 뒷받침할 동반자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마라톤의 영광이 황영조와 이봉주에서 대가 끊기지 않도록 저변을 확대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영웅은 하루 아침에 우연히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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